시편 83편: 약한 자 편에 서시는 하나님

해설:

이것은 아삽의 이름으로 된 마지막 시편입니다. 역시 이 시편은 다시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먼저 시인은 하나님께 더 이상 침묵을 지키지 말아 달라고 기도합니다(1절).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들의 위협과 압제 아래에 신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3절). 그들의 목표는 이스라엘을 이 땅에서 완전히 멸절시키는 것입니다(4절). 시인은 그들을 “주님의 원수들”(2절)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그들의 적대 행위는 곧 하나님께 대한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지정학적으로 여러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 있었고, 강대국들 사이의 전쟁에서 늘 통로의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지역 패권을 잡은 국가들은 항상 이스라엘을 점령하여 통로를 확보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늘 존립의 위기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의 존립을 위태롭게 했던 몇 민족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6-8절) 과거에 미디안에게 하신 것처럼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민족들을 징벌해 달라고 기도합니다(9-12절). “미디안에게 하신 것”에 대해서는 사사기 7장과 8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어서 시인은 여러 가지 비유를 사용하여 “주님의 원수들”을 심판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주님의 심판은 “산림을 태우는 불길”과 같고 “산들을 삼키는 불꽃”과 같으며(14절) “회오리바람”과 같고 “폭풍”과 같습니다(15절). 그 심판 앞에서는 아무리 강한 나라라도, 아무리 강한 왕과 장수라도 “바람에 굴러가는 엉겅퀴와 쭉정이”(13절)와 같은 신세가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그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수치를 당할 때에야 그들은 돌아서서 주님을 간절히 찾을 것이며(16절) 그분만이 “홀로 가장 높으신 분”(18절)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하나님께 이제는 침묵을 깨고 일어서 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묵상:

시인은 이스라엘을 적대하는 민족들에게 “주님의 원수들”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는 “주님의 백성”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제사장의 나라로 세우신 민족이기에 “주님의 백성”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당시 지중해 국가들 중에 가장 작은 나라였으며 주변 강대국들에게 끊임없이 존립을 위협 받았다는 점에서도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인간의 야만성과 잔인성이 절제 없이 표출되던 시대에 강대국들 사이에서 약소국으로 산다는 것은 매일 생존에 위협을 받고 산다는 뜻이었습니다. 

한 개인이든, 한 국가이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동일한 패턴이 보입니다. 인간적으로 강해지고 부해지면 그만큼 우리는 오만해지고 방자해집니다. 하나님을 업신 여기고 자신의 탐욕을 따라 행동합니다. 반면, 인간적으로 약해지고 가난해지면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도움을 구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가난하고 연약하고 압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 편에 서십니다. 82편에서 시인은 가난하고 가련한 ‘사람들’ 편을 드시는 하나님을 노래했고, 83편에서는 연약한 ‘민족’ 편을 드시는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연약한 자 편에 서시는 분이라는 사실에서 큰 위로를 받습니다. 또한 이 사실에서 우리는 큰 도전을 받습니다. 우리의 타락한 마음의 관성은 강한 것, 부한 것, 높은 것에 끌리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우리 마음의 끌림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눈으로 낮은 곳, 어두운 곳, 깨어진 곳을 돌아 보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6 responses to “시편 83편: 약한 자 편에 서시는 하나님”

  1. Reply 가 안되서 test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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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온 세상이 하나되어 교인들과 교회를 비난하고 멸시합니다. 주님 그들에게 고난과 시련을 주시되 완전히 멸망치 마시고 깨닫고 회개하고 주님 품으로 돌아오는 기회를 허락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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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약할 때 강함주시고,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오늘도 나아갑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난한자, 약한자, 낮고 어두운 곳, 깨어진 곳을 돌아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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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인간의 원죄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짓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개인이나 단체이나 권력기관를 막론하고 인간이 있는 곳은 원죄가 학습되어 욕망과 교만과 업신여김과 소유욕, 남을 지배하려는 권력등 인간이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얼마든지 만들어내는 것이 원죄 본성이라고 생각됩니다. 조국이 이스라엘과 같은 지정학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 열강에의해 분열되어 UN에 등록된 193개국가중에서 유일하게 한반도만 같은 민족이 갈라져서 원수처럼 지내고 있는 슬픈현실입니다. 같은 민족 동포로 서로 손잡고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 돕고 협력한다면 아마도 제2의 이스라엘이 되어 하나님께서 더욱크게 사용하실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주님! 김정은의 권력욕을 주님의 마음으로 바꿔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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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어제는 인터넷이 연결이 되지 않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신호가 약하게 잡히고 자주 끊겨서 비바람이 부는 날씨 탓으로 생각했는데 (테크놀러지 완전 음치라는걸 드러냄) 남편이 이리저리 해보다 라우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라우터를 교체하고 나니까 오늘 아침부터 밝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제는 8절 짧은 시편인데 권력의 달콤함에 빠져 악한 자와 못된 자들의 입장을 앞세우는 이들을 꾸짖으시는 주님의 음성이 지금도 여전하지 않은가 생각했습니다. 스스로를 신처럼 여기며 언제까지라도 승승장구할 줄로 착각하는 권세자들로 인해 세상이 ‘온통 흔들리는’ 것은 시인의 시대나 우리의 시대나 마찬가지입니다. 주 초에 교우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교회 분위기가 점점 이상하게 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교단 탈퇴가 당연한 선택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안 그러던 사람인데 자기를 대하는 태도도 돌변했고, 말에 가시가 담긴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그제 저녁에는 미국 여선교회 연회 전회장과 줌으로 대화를 했습니다. 연회 공천위원회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데 다음 회의 때 내가 참석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더니 안부도 묻고 얼굴을 보자며 줌미팅을 연결했습니다. 그 친구는 중국 커뮤니티의 UMC를 다니는데 부모가 중국인이라는 것 말고는 여늬 미국인과 다를 것이 없는 2세입니다. 그 교회도 얼굴만 중국사람들이지 미국 감리교회인들과 다를 것이 없는 회중이라 그 친구가 회장으로 연회를 자연스럽게 또 유능하게 잘 이끄는 것을 보며 옆에서 부러워했습니다. 한국 교회들은 이름은 UMC 지만 여선교회 활동만 보더라도 내용으로는 UMC를 따르지 않습니다. 미국 여선교회의 조직과 활동을 모델 삼아 한인 여선교회 연합회가 구성되고 활발하게 활동해 온 역사적 공은 크지만 이것이 한편으로는 미국 여선교회 조직과 멀어진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영어로 예배하는 것이 낯설고 부담스럽다며 연회 예배에는 참석하지 않으며 한인 여선교회 예배 (오늘 새해맞이 예배가 있습니다)에는 한복으로 곱게 단장하고 교회별로 대거 참석합니다. 속해 있는 교회가 여선교회의 프로그램에 참여하지도 않는데 내가 부회장으로 봉사를 한다는 것이 맞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회장의 따뜻한 배려와 이해심으로 4년을 어찌어찌 넘기고 이젠 둘이 다 공천위원으로 연회에 남아 있습니다. 그 친구 교회에는 2년 전에 한국 목사님이 파송 받아 오셨는데 앞에 계셨던 여성 목사님이 철권(?) 통치를 하다 정년 퇴임하시고 새로 오신 한국 목사님이 친절하고 부드러운 성격이라 전환이 무리없이 이루어졌다고 했습니다. 다만 지난 연말에 몇 몇 가정과 교인이 교단 탈퇴를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출석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목사님과 교인들 대부분이 2024년에 교단의 총회도 있고, 또 탈퇴와 관련한 디테일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 지금은 기다려보자 wait and see mode 며 지금은 코로나로 중단된 사역을 일으키는 데 노력을 기울이자는 입장이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가 자기 교회도 목사님이 교회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요, 목사님께 순종하면 교회와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라고 믿는 편이라는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가르치는대로, 하자는대로 같이 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목사님들과 고민하는 교인들을 위한 기도로 우리 대화를 마쳤습니다. 그랬는데 어제는 가게에 교단탈퇴가 정해진 답이라고 생각하는 권사님 한 분이 들리셨습니다. 일 보러 가게 근처를 지나다 생각이 났다며 오셨는데 성경을 보는 눈, 특히 성경에서 죄라고 명시한 것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같이 교회를 다닐 수 없다며 당연히 교단에서 나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남편과 나는 생각이 다르고 말씀을 해석하는 것이 달라도 함께 예배하고 섬기고 친교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착각이고 나이브한 생각일까요. 오늘 83편을 읽으면서 “원수”가 누구인가 생각해 봅니다. 다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세상, 나와 다르면 원수가 되는 세상에서 “약자”는 또 누구인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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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하나님은 선하신분이십니다. 부디 저희를 선한 길로 이끌어주세요.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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