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고라 자손의 시로 되어 있는 이 시편의 히브리어 원문은 번역하기에 모호함이 많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번역본 사이에 차이가 많습니다. 하지만 큰 주제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시편에서 시인은 예루살렘 성전을 회상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고백합니다. 학자들은 이 시편이 예루살렘 멸망 후에 바벨론과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던 상황을 배경으로 쓰여진 것이라고 봅니다.
먼저 시인은 예루살렘 성전을 회상하며 축복합니다(1-3절). 그 터전은 “거룩한 산”(1절, 개역개정 “성산”) 위에 있고, 하나님은 “시온의 문들”(2절)을 다른 어느 곳보다 더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도성”(3절)이 영광스러운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전을 통해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묵상 중에 시인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습니다. “라합”은 이집트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내가 라합과 바빌로니아를, 나를 아는 나라로 기록하겠다”(4절)고 말하는 이유는 그 나라에 흩어져 사는 유다 백성 때문입니다. 그들은 타의로 인해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살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 그들은 이방 땅을 하나님을 아는 땅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불레셋과 두로와 에티오피아도 시온에서 태어났다고 하겠다”(4절)는 말도 역시 그곳에 흩어져 사는 유다 백성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 인해 불신의 나라가 거룩한 나라로 변화된다는 뜻입니다.
시인은 다시금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고백으로 돌아옵니다. 시온 산에 세워진 성전은 하나님과 이 땅이 만나는 곳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에서 났다”(5절)는 말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에게 속해 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만이 아니라 모든 이방 민족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6절). “노래하는 이들과 춤을 추는 이들”(7절)은 예배자들을 가리킵니다. 예배자들이 결국 고백할 말은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고 그분께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묵상:
이스라엘 백성의 ‘디아스포라'(흩어짐) 역사는 출애굽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주전 721년에 앗시리아가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 시킨 후, 앗시리아 제국은 이스라엘 백성을 제국 내의 여러 지역으로 이주시켰습니다. 그로 인해 디아스포라 현상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한 세기 후, 바벨론은 남왕국 유다를 멸망시킨 후에 유다 백성의 일부를 바벨론으로 데려가 포로 생활을 하게 했습니다. 이로써 디아스포라는 이스라엘과 유다 역사의 중요한 특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주변 나라들로 흩어진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곳에서 하나님을 믿고 살아갔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소망은 예루살렘 성전이 회복되는 것이며 그곳에서 제사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늘 시온 성전을 생각하며 기도 올렸습니다.
이 시편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상황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해 줍니다. 그들은 타의로 남의 나라 땅에 몸붙여 살아가는 처량한 신세였습니다. 시편 137편은 그런 상황에서 부르던 탄식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 시인은 그들의 존재로 인해 불신의 땅이 믿음의 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들 가운데 그들이 살아가는 것은 비참한 ‘유배’가 아니라 그 나라를 변화시키기 위한 ‘파송’입니다. 그들은 선교사로서 그곳에 보냄 받은 것입니다. 비록 그들은 절대 소수였지만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예배하는 것으로 그들은 그 땅과 그 민족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불신의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불신의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는 것은 유배 생활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의 시편은 그 상황을 뒤집어 보게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유배자가 아니라 예배자로 보냄 받았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외면하고 부정하는 세상에서 오롯이 그분을 신뢰하고 예배하는 사람, 그 사람이 그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한 사람의 예배자를 오늘도 찾으십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