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3편: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해설:

이 시편은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를 노래합니다. “주님이 다스리신다”(1절)는 “주님이 왕이시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왕권은 온 우주에 미칩니다. 온 세상이 제대로 운행되고 있다는 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영원 전부터”(2절)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영원 전”이라는 말은 형용 모순입니다. ‘영원’에는 전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일차원의 시간에만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으며 미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권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강물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위협하는 힘을 상징입니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미친듯이 날뛰는 모습을 보면 공포스럽습니다. 홍수가 지나고 난 자리에는 폐허만 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모든 것을 쓸어 버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큰 물 소리보다 더 크시고 미친 듯이 날뛰는 물결보다 더 엄위하신”(4절) 분입니다. 홍수가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멸절된 것처럼 보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생명의 움이 돋아납니다. 또 얼마가 지나면 폐허의 자리는 파릇한 새싹의 풀밭으로 변합니다. 그런 모습에서 하나님의 통치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주님의 증거는 견고하게 서 있으며, 주님의 집은 영원히 거룩함으로 단장하고 있습니다”(5절)라고 고백합니다.

묵상: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이것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관통하는 메시지입니다. 우리 눈에는 능력있는 인간들이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 같아 보입니다. 우주와 자연 세계는 저절로 그렇게 운행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분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우주와 자연을 운행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다만, 하나님의 손길은 너무나 크시고 그분의 걸음 걸이는 너무나 느리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너무나 조급하고 성급한 우리는 그분의 템포에 맞추어 살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 방법을 알아도 그 방법대로 살아갈 용기가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다스리시는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이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이 손을 떼신 것처럼 보일 때 조차도 하나님은 다스리고 계시다고! 영원 전에도 그랬고 영원 후에도 그럴 것이라고! 지금도 그렇다고! 그러니 그분께 맡기고 그분을 의지하라고! 

그럼에도 우리는 그 사실을 자주 잊습니다. 무시합니다. 외면합니다. 눈 질끈 감고 우리 식대로 일을 처리합니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더 빠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것이 화를 자초하는 길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뼈아픈 후회를 합니다. 이 후회를 얼마나 많이 반복해야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견고히 믿고 잠잠히 그분께 의지할 수 있을까요?

6 responses to “시편 93편: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1. 태초 그 이전부터 마지막 시간 그 후 영원히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경배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모든 자연재해와 홍수가 위엄하신 주님을 알리는데, 너무나 무지하고 연약해서 대부분 시간에 주님을 잊고 사는 가련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살기를 원합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뒤를 따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돈독한 믿음의 자매가 두번째 항암 치료를 받는 날입니다, 부작용이 없고 치유 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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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우주의 개념이 제한적일 때 알았던 주님을 이제는 우리의 상식과 지식을 초월한 우주의 개념을 따라 하나님의 무한함을 믿습니다, 나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주님의 위엄과 능력을 헤아리는 무지를 용서하시기 빕니다.
    주님의 영원 속에 한 순간으로 왔다 가는 내 자신을 생각하며 비록 한 순간이라도 신실하고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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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삿21:25). 그 결과 종교적, 도덕적, 사회적 혼란과 파탄이었으나 사사들의 노력에 백성들을 구원해냈습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주는 사사시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하나님 종이라고 하는 사람도 자기소견에 옳은대로 말씀을 해석하고 선포하여 이단과 같은 사이비 종교들을 만들었습니다. 선량한 백성들을 미혹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종으로 삼고 있습니다. 주님! 영안을 열어주셔서 분별력을 주시고 말씀 중심으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과 힘을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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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을 믿고 신뢰하기를 기도합니다. God is in control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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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다섯 절 짤막한 시 속에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요한복음서는 말미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일일이 다 기록한다면
    온 세상이라도 그것을 기록한 책을 담기에 부족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모래알만큼 작은 깨달음을 시작으로 위대하신 하나님의 세계를 더듬어
    나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삶의 방향을 정하는 동력이 됩니다. 새벽에 일어나 성경책을 열면 지금과 다른 옛 세상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분명 다른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에 살던 사람이 찬양한 하나님이 내가 오늘 찬양하는 하나님과 같은
    분인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시인도 바다가 뛰놀고 출렁이며 철썩거린다고 말합니다. 파도가 깨어지는 소리보다 여호와의 능력은 더
    크고 강하다고 찬양합니다. 시인은 파도 치는 바다를 실제로 보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떠올렸을 수도 있고, 살면서 겪는 풍파를 파도에
    비유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시인의 한숨과 공포, 바램과 고백에 백퍼센트 공감합니다. 긴 세월을 지나며 지식과 기술이 놀랍도록
    발전하고 시인은 상상하지도 못한 우주 탐험 시대를 살지만 인간의 최소 핵은 변하지 않았다는 뜻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같으신 것인지,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아브라함이요 이삭이요 야곱인 것인지, 그래서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인 것인지…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나를 다스리시는 분을 찬양하는 것과 같습니다. 날마다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계절마다 자연의 색을 바꾸시고, 태어남과 소멸의 법도를 굳게 지키시는 하나님이 나를 아십니다. 이것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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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여호와는 제가 표현할수 없이 큰 분이십니다. 그분의 자녀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에게 합당한 행동을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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