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이 시편은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를 노래합니다. “주님이 다스리신다”(1절)는 “주님이 왕이시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왕권은 온 우주에 미칩니다. 온 세상이 제대로 운행되고 있다는 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영원 전부터”(2절)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영원 전”이라는 말은 형용 모순입니다. ‘영원’에는 전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일차원의 시간에만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으며 미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권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강물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위협하는 힘을 상징입니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미친듯이 날뛰는 모습을 보면 공포스럽습니다. 홍수가 지나고 난 자리에는 폐허만 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모든 것을 쓸어 버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큰 물 소리보다 더 크시고 미친 듯이 날뛰는 물결보다 더 엄위하신”(4절) 분입니다. 홍수가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멸절된 것처럼 보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생명의 움이 돋아납니다. 또 얼마가 지나면 폐허의 자리는 파릇한 새싹의 풀밭으로 변합니다. 그런 모습에서 하나님의 통치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주님의 증거는 견고하게 서 있으며, 주님의 집은 영원히 거룩함으로 단장하고 있습니다”(5절)라고 고백합니다.
묵상: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이것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관통하는 메시지입니다. 우리 눈에는 능력있는 인간들이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 같아 보입니다. 우주와 자연 세계는 저절로 그렇게 운행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분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우주와 자연을 운행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다만, 하나님의 손길은 너무나 크시고 그분의 걸음 걸이는 너무나 느리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너무나 조급하고 성급한 우리는 그분의 템포에 맞추어 살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 방법을 알아도 그 방법대로 살아갈 용기가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다스리시는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이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이 손을 떼신 것처럼 보일 때 조차도 하나님은 다스리고 계시다고! 영원 전에도 그랬고 영원 후에도 그럴 것이라고! 지금도 그렇다고! 그러니 그분께 맡기고 그분을 의지하라고!
그럼에도 우리는 그 사실을 자주 잊습니다. 무시합니다. 외면합니다. 눈 질끈 감고 우리 식대로 일을 처리합니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더 빠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것이 화를 자초하는 길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뼈아픈 후회를 합니다. 이 후회를 얼마나 많이 반복해야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견고히 믿고 잠잠히 그분께 의지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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