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4편: 복수하시는 하나님

해설:

이 시편은 악한 자들을 징계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고백이며 또한 하나님의 정의를 드러내 달라는 호소의 기도입니다. 

먼저 시인은 “복수하시는 하나님”(1절)이라는 표현을 두 번 사용하여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복수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이나 잡신들의 복수와 다릅니다. 그들의 복수는 비이성적인 감정적 격발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복수는 그분의 절대 정의와 절대 진리에 따른 것입니다. 우주의 심판자로서 그분의 절대 기준에 따라 악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믿는 시인은 속히 일어나 악인들을 심판해 달라고 호소합니다(2-3절).

이어서 시인은 악한 자들의 소행을 소상히 묘사합니다(4-7절). 그들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온갖 악행을 저지릅니다. 그들의 악이 극심하다는 사실은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있는지를 반증해 줍니다. 그들은 스스로 가장 지혜로운 것처럼 착각하고 있지만, 시인은 그들을 향해 “백성 가운데 미련한 자들”(8절)이라고 부릅니다. 시인은 여러가지 질문으로 그들의 어리석음을 폭로합니다(8-11절). 

12절에서 시인은 악한 자들의 악행에 시달리면서도 거룩하게 살아가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에게 말머리를 돌립니다. 그는 악한 자들에게서 받는 고난을 “주님께서 꾸짖으시고 주님의 법으로 친히 가르치시는”(12절) 것으로 받아 들입니다. 경건한 사람들은 악한 자들의 악행을 주님의 손에서 받는 징책으로 받아 들이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거룩하게 살기를 힘씁니다. 우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정의를 따라 판결해 주실 것입니다(13-15절). 그것은 시인 자신이 경험한 사실입니다. 그는 자신이 아직 살아 있는 이유는 오직 주님의 보호하시는 손길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16-17절). 

하지만 시인 자신도 악인들의 횡포와 그들에게서 받은 고난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 있어서 흔들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미끄러진다고 생각할 때에는, 주님의 사랑이 나를 붙듭니다. 내 마음이 번거로울 때에는, 주님의 위로가 나를 달래 줍니다”(18-19절)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악인들에 대한 심판이 일어나지 않을 때 마음이 번거로와지고 미끄러질 위기에 처합니다. 그런 문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 그분은 사랑으로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십니다. 지금 당장 자신이 보고 싶은 심판이 일어나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결국 심판하실 것임을 믿고 마음을 수습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다시 한 번 악인들이 심판 받을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면서(20-21절) 하나님께서 결국 모든 것을 심판하시고 바로 잡으실 것이라고 고백합니다(22-23절). 하나님은 스스로의 손을 들어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복수해 주십니다. 인간의 복수는 자기중심적이고 감정적이지만, 하나님의 복수는 언제나 정의롭고 또한 정당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선을 악을 이깁니다(롬 12:21).

묵상: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들만을 지켜 보면 하나님의 정의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현실에서는 악인들이 번성하고 선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일들이 비일비재 하기 때문입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 구조로 인해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고 부유한 사람은 더욱 부유해집니다. 부와 특권이 대물림되며,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이미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혹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온갖 죄악을 일삼습니다. 

그들 중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치부와 번영을 위한 수단으로 삼을 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지만 삶 속에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모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가진 것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은 분노를 쌓아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믿는 사람들은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오늘의 시인처럼, 불의한 현실로 인해 마음이 번거로워지고 믿음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그분의 시간에 따라 그리고 그분의 기준에 따라 정의를 드러내십니다. 그것에 대한 믿음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도록 자신을 챙겨야 합니다. 

둘째, 그 믿음에 따라 하나님께서 속히 그분의 정의를 드러내 주시기를 기도하며 그분의 정의가 실현되도록 자신의 삶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인간의 복수는 더 큰 불행을 낳을 뿐입니다. 인간의 복수는 정의를 향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복수는 하나님께 속한 것”(롬 12:19)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어느만큼 잘못했는지 그리고 그 잘못에 대한 정당한 심판이 어떤 것인지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 아십니다. 우리는 복수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정의가 실현될 수 있기를 기도하며 또한 그것을 위해 실천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 될 것을 기다리며 선으로 악을 이기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사회는 하나님의 정의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될 것입니다.  

7 responses to “시편 94편: 복수하시는 하나님”

  1. 부조리로 채워있고 악인 들이 즐기는 세상입니다, 고아와 과부와 소외된자들을 멸시하고 비방하는 실정입니다. 주님께서 공평하게 심판 하시줄 믿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멸하시지 마시고 그들이 회개할 기회를 허락 하시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가족들과 함께 새하늘과 새땅의 소망을 갖고 어려운 세상에서도 기쁨으로 살아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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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내가 미끄러지고 번거러울 때 내 마음에 들어오시어 위로해 주시고 용기를 주시는 주님은 오직 나의 언덕이며 나의 반석이십니다, 악을 악으로 갚고 싶을 인간의 욕망을 잠재우는 지혜와 총명을 주시어 기도와 인내를 통하여 주님의 시간 안에서 주님의 정의가 이루어지기를 간구합니다.
    우리가 처한 모든 부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해결되기를 기도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오늘 하루를 채워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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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세상은 부조리와 부정부패로 물들어가지만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정의의 칼을 휘두르시어 그들을 심판하시고 억울함을 당한 백성들을 사랑으로 감싸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날이 오기전에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믿음으로 기다리게 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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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어제 저녁에는 연초에 테네시주 멤피스시의 한 흑인 청년 운전자를 경찰이 구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의 연루자 5명에 대한 기소결정이
    큰 뉴스였습니다. 29살 타이리 니콜스가 차를 난폭하게 운전한다고 본 경찰이 스탑을 했는데 그 과정이 전혀 순조롭지 않게 진행이 되어
    운전자와 경찰이 서로 다투는 상황이 되면서 경찰이 그를 제압하느라고 그랬는지 – 사건 당일의 비디오가 오늘 일반에 공개된다고 합니다 –
    경찰 여러 명이 한 사람을 집단으로 폭행을 했고 그는 그 때 입은 심한 부상으로 인해 2-3일 뒤에 숨졌습니다. 마치 휴먼 피냐타
    ‘human pinãta’ 처럼 묶인 상태에서 매를 맞아 죽은 그를 추모하고자 사람들은 “I AM A MAN”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 사진도 보았습니다. 어린 아기의 아빠이기도 한 그를 집단 구타한 경찰 5 명은 모두 흑인입니다. 몇몇 신문은 흑인에 대한
    경찰 범죄 “Blue on Black Crime”라고 제목을 달기도 합니다. 파란색 경찰 제복 (Blue)과 흑인의 피부색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망한 청년의 부모와 가족에게 연루 경찰 5명에 대한 기소 결정은 정의의 신호탄처럼 보였을지 모르겠습니다. 복수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바라는 것은 법적인 응징일 것입니다. 오늘 시인이 깨닫는 하나님의 복수는 두 가지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우선,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임하는 위로와 힘입니다. 불의한 세상이지만 그것을 견뎌내고 버틸 힘을 주십니다. 자기 이성과 감정으로라면
    살아남을 것 같지 않은데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니 견딜 수 있습니다. 피해를 입힌 사람들에게 임하는 징벌이 그 다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수’ 하시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정의가 승리하는 때가 온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다만, 우리는 이것을 볼 수 있을 지
    없을 지를 알 수 없습니다. “주는 악한 자들이 지은 죄대로 갚으실 것 (23절)”이라고 시인은 끝맺습니다. 주님께 달린 일입니다.
    주님께서 이루실 줄로 알고 우리는 또 우리의 길을 갑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합니다. 내 발은 늘 미끄러질 것 같이 불안하고, 내
    마음은 욕망이 들끓어 늘 번거롭기 때문입니다. 슬픔과 아픔으로 인해 내가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어머니 같은 성령의 손길이 나의
    눈물을 닦아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기대어 이 어려운 세상을 이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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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내가 죽어서 만날 하나님은 위대한 판사이심을 의심치 않습니다. 이미 제게 수많은 기회를 주셨고 전혀 변명할수도 항소할수도 없는 완벽한 판결을 내리십니다. 내 실수를 만회할 기회는 오직 지금 이순간, 내가 살이있는 시간뿐이라는 사실이 무섭고도 천만다행이라 느껴집니다. 주님이 악인에게주시는 최고의 형벌은 질병과 파산같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 마음의 죄책감, 허망함, 후회를 주시는것이 아닐까 합니다. 세상의 부질없는 재물, 욕심, 인기, 신념을 옳다고 따른 말로가 얼마나 허망하고 부끄럽고 미안한 것인지 땅을 치고 울며 후회하게 만드는 것 말입니다. 저 또한 악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나쁜 행동을 하고 후회를 합니다. 하지만 제가 악행을 멈추고 다시 주님께 돌아오기를 기도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손가락질하며 자기는 정의를 집행했다 떠드는 군중가운데서 나의 얼굴을 봅니다. 예수를 만나게 하소서. 마음에 평화의 축복을 주소서. 그래서 앞으로 선한 일을 기쁘게 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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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금요일 부터 이메일로 말씀 묵상이 등어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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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금요일 부터 이메일로 말씀 묵상이 않들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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