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이 시편은 초막절 같은 절기에 불렀던 찬양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너라, 우리가 주님께 즐거이 노래하자”(1절), “찬송을 부르며 그의 앞으로 나아가서, 노래 가락에 맞추어, 그분께 즐겁게 소리 높여 외치자”(2절), “오너라, 우리가 엎드려 경배하자”(6절), “오늘,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들어 보아라”(7절) 등의 구절에서 그런 암시를 발견합니다. 회중이 성전으로 행진해 들어가면서 불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경배를 요구하면서 시인은 그 이유를 밝힙니다.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참된 하나님이시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시며(3-5절)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7절).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높여 경배하며 거듭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8-11절). “므리바에서처럼”(8절)은 출애굽기 17장 1-7절에 나오는 이야기를 가리키고, “맛사 광야에 있을 때처럼”은 민수기 20장 2-13절에 기록된 이야기를 가리킵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불신하여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그들의 문제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행동을 이미 보았음에도 여전히 그분을 신뢰하지 못하고 “시험하고 또 시험하였다”(9절)는 사실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은 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11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 대로 , 여호수아와 갈렙 이외의 모든 출애굽 세대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다시 들려 주시는 이유는 “오늘”(7절) 예배하는 사람들도 동일한 죄를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안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목적지에 이르려면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예배하고 섬겨야 합니다.
묵상:
히브리서 저자는 이 시편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그는 7절의 “오늘”이 매일 주어지는 현재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오늘’이라고 하는 그날그날, 서로 권면하여, 아무도 죄의 유혹에 빠져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히 3:13)라고 씁니다. 어제 들은 말씀으로 오늘을 살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받아 먹었던 만나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그날그날 새롭게 받아 먹어야 할 생명의 양식입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의 예배는 우리를 신실한 믿음 안에 머물러 살게 해 줄 것입니다.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우리지 않으면 우리의 예배는 영적 마약처럼 우리를 소모시킬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안식”(11절)에 대해서도 새롭게 해석합니다. 광야에서 유랑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 정착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또 다른 안식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의 사역을 마친 후에 안식에 들어가신 것처럼 영원하고 완전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께서 주실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 일을 마치고 쉬신 것과 같이, 그 사람도 자기 일을 마치고 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씁시다”(히 4:10-11)라고 말합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완전한 제사를 드리셔서 믿는 이들을 지성소에 들게 하셨습니다(히 10:19). “지성소에 든다”는 말은 하나님의 품에 살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고 있던 죄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온전히 화해되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는 안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과 사랑과 기쁨과 의를 누립니다. 그 안식은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 완전해지고 영원해질 것입니다. 그 영적 진실을 확인하고 전하기 위해 우리는 정기적으로 물리적 공간에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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