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시인은 먼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 행동을 묘사합니다(1-3절).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1절)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셨다는 말 외에는 자신들이 겪은 놀라운 구원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 기적을 통해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고(2절), 택하신 백성에게는 “인자하심과 성실하심”(3절)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분을 찬송할 때마다 새로운 열정이 솟구쳐 오를 것입니다.
시인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올리라고 요청합니다(4-6절). “온 땅아”(4절)라는 말은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제대로 안다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심드렁한 노래로 찬양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과 몸을 다하여 최고의 찬양을 올리게 되어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대한 열정으로 인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처럼 최상급의 언어와 표현을 동원합니다.
인간만이 아니라 그분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과 피조 세계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온 세상 만물에게 하나님께 대한 찬양에 참여하라고 요청합니다(7-9절). 유물론적인 사고 방식으로 본다면 이것은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이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인간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며 신음하고 있다고 했습니다(롬 8:22).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하나님의 피조 세계가 무참히 훼손되어가고 있는 지금은 그 신음이 더 심할 것입니다. 시인은 모든 피조물에게도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합니다. 그분께서 지금의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구원을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주님께서 오신다”(9절)고 선언합니다. 96편 13절에서도 시인은 동일하게 선언한 바 있습니다. “심판하다”(9절)라는 말은 그분의 정의로 바로 잡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분의 오심은 악하게 산 사람들에게는 심판이요, 거룩하게 산 사람들에게는 구원을 의미합니다. 때로 현실은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고 혹은 무능력한 것 같고 혹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분은 결국 전능의 손길을 펼치셔서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며, 뭇 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리실 것”입니다. 그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묵상:
시인이 하나님을 향해 품고 있던 마음은 참으로 뜨겁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과 사랑과 정의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단어와 표현들을 동원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그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생각할 때면 그의 마음에는 감사와 감격이 소용돌이 칩니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고, 전에 부르던 노래를 반복할 수가 없습니다.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악기를 동원합니다. 이웃을 찾아가 자신의 예배에 참여하라고 말합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나무와 풀과 동물들에게도 자신과 함께 주님을 찬양하자고 권합니다.
시인의 마음을 더 뜨겁게 하는 것은 그 하나님께서 심판하러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의 절대적인 정의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처한 불의한 현실을 모르시는 것도 아니고 무관심하신 것도 아닙니다. 전지하신 주님은 그 모든 사정을 보고 계시고, 전능하신 주님은 그분의 진리와 정의에 따라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기에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현실에서 그분의 다스림을 선포하고 불의한 세상에서 그분의 의를 따라 살도록 노력합니다. 마침내 그분이 손을 들어 심판하실 날이 올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인이 바라고 갈망했던 “주님의 오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믿습니다. 아이작 와츠는 이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찬송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여기서도 시인은 알지 못하고 예언을 한 셈입니다. 그가 기대하고 바랬던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시인이 갈망했던 “주님의 오심”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분을 통해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은 시인의 마음보다 한결 더 뜨거워야 마땅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과거에 어떤 일을 해 오셨는지를 생각할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신 일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더 강한 열정과 뜨거운 사랑으로 그분을 예배하고 찬양해야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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