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2편: 고난 당할 때

해설:

이 시편에는 “가련한 사람이 고난을 받을 때에, 자신의 고민을 주님께 토로하는 기도”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이 시편은 기도자가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 대해 가장 절절하게 표현한 시편 중 하나입니다. 그런 까닭에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에게 이 시편은 큰 위로가 됩니다. 이 시편을 읽고 기도하는 동안 누군가가 “나도 그랬어. 나도 알아”라고 말해 주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고난 당할 때 가장 큰 위로는 그 고난을 먼저 당하고 회복된 사람이 던지는 “나도 그랬어”라는 한 마디 말입니다.

이 시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먼저 탄원 기도가 나옵니다(1-11절). 기도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 주시기를 구합니다(1-2절).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 지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습니다. 오래도록 기도했음에도 응답이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신 것처럼 혹은 귀를 막고 계신 것처럼 느낍니다. 실은 그렇지 않은데, 기도자 편에서 그렇게 느끼는 것입니다. 이어서 기도자는 자신이 처한 고난의 상황을 묘사합니다(3-11절). 지금 그는 원수들의 모욕과 조롱 가운데서 피가 마르는 나날을 지내고 있습니다(8절). 기도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저주와 진노”(10절)를 쏟아 부으셨다고 느낍니다. 기도자는 여러 가지 비유(연기처럼 흩어지는 날들, 화로처럼 달아오른 뼈, 풀처럼 시든 몸, 뼈와 살이 달라붙음, 광야의 올빼미 같이, 폐허 더미에 사는 부엉이 처럼, 지붕 위의 외로운 새 처럼, 재를 밥 처럼 먹고, 눈물 섞인 물을 마심, 기울어지는 그림자와 말라가는 풀과 같음)를 사용하여 자신의 처지를 묘사합니다. 

자신의 가련한 처지에 대해 묘사한 다음 기도자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고백으로 옮겨 갑니다(12-22절). 인생의 조건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동일하십니다. 여기서 기도자는 “시온을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13절)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전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면, 이 시편은 포로기 이후에 지어졌을 것입니다. 시온에 대한 사랑은 곧 하나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기도자는 주님께서 폐허가 된 시온을 다시 세워 주실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 하나님이시기에 자신의 처지를 돌아 보시고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기도자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록하고 선포하라고 회중에게 명합니다(18-22절). 그렇게 할 때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아직 창조되지 않은 백성”(18절, 개역개정 “장래 세대”)이 그것을 읽고 주님을 믿고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의 이름이 온 세상, 뭇 백성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자는 다시 자신의 처지로 돌아와 하나님께 간구를 드립니다(23-28절). 그는 중년도 되지 못하여 죽게 된 처지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묵상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때를 따라 옷을 갈아 입듯이 변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기도자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시면 “주님 앞에 굳건하게 서 있을 것입니다”(28절)라고 고백합니다.

묵상: 

산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 축복에는 고난도 포함됩니다. 고난은 축복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축복의 일부입니다. 고난으로 인해 축복은 더욱 커지고, 고난으로 인해 축복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고난을 통해 더 큰 축복을 선사 받기도 하고, 고난 안에 숨겨진 축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난은 필수이지만 불행은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고난에 대해 혹은 고난 중에 어떤 태도로 사느냐에 따라 인생은 불행해지기도 하고 행복해지기도 합니다. 

그렇기는 한데, 때로 고난이 너무 무겁고 힘겨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이들은 고난의 한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그럴 때면 하나님에게서 버림 받은 것 같고 그분에게서 징계를 받는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 심적 고통은 더욱 커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감정의 속임수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분은 그분의 전지전능하심으로 우리를 위한 계획을 마련해 두고 계십니다. 

따라서 현실이 어떻더라도 우리는 그분의 계획과 섭리를 믿고 견뎌야 합니다. 고난 중에 주님을 믿고 견디게 해 주는 것이 기도입니다. 탄식의 기도로써 그분 앞에 마음을 쏟아 놓고, 찬양과 고백의 기도로써 그분을 높입니다. 그러다 보면, 그분의 계획은 우리의 계획과 다르고, 그분의 시간표는 우리의 시간표와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믿음으로 그분 안에 머무는 사람은 언제든지 굳건하게 서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 중에 숨겨진 비밀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고난을 믿음으로 견뎌내는 모습은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 깊은 감화와 깨달음을 안겨 줍니다. 가장 강력한 간증은 성공과 번영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5 responses to “시편 102편: 고난 당할 때”

  1. 지금까지 광야 같은 이민 생활을 돌이켜 보니 고난이 닥쳐올때마다 가정예배를 통해서 주님께서는 해결해주셨습니다. 하나님 그 은혜 감사합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매맞기전에 고난이 온기전에 매일 예배를 통해 말씀과 기도로 하나나님과 소통하므로 주시는 지혜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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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이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길게 보고 끈기 있게 가는 사람에게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오늘 시편도 익숙합니다. 시인의 안타까운 마음이 여러 절 구구절절하게 적혀 있습니다. 욥의 처지가 연상 되기도
    하고, 하나님한테 ‘매를 맞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심정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간증을 들으면 ‘하나님이 때리셨다’라는 고백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나 개인적으로는 거북해서 잘 쓰지 않는 표현이지만, 어려운 시간을 지나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자기를 연단
    시키려고 그렇게 하셨다고 믿는다는 것을 압니다. 지금 아픔과 괴로움을 겪는 사람에게 고통의 근원이 되는 것이 특정한 개인이든, 병이든
    혹은 복잡하게 얽힌 사건들이든 이를 통과하는 길은 ‘뚫고 지나가는 길’ 하나 뿐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 길을 만났을 때 ‘버티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교회 어느 친구가 아는 사람 중에 병이 아주 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치료도 다
    했고, 혹시라도 어떤 새로운 치료법이 생겨도 몸이 이겨낼 수 없으니 고통을 덜어주는 약을 먹으면서 견딜 뿐이라는 말을 했답니다.
    그에게는 딸이 셋이 있는데 첫째와 둘째는 결혼할 상대가 있고, 셋째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는 남편 없이 자기 힘으로 살림을 꾸리면서
    가끔 친정의 도움을 받아 딸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딸들이 결혼하고 셋째가 대학에 입학하는 것까지 본 뒤에야 죽을 수 있겠다며 버텼습니다.
    내가 교회 친구로부터 이 사람 이야기를 들은 것이 3, 4년 전쯤입니다. 몇 주 전에 친구한테 그의 소식을 물으니 “원하던대로” 두
    딸은 사귀던 청년들과 결혼을 했고, 막내는 대학에 들었갔으며 본인은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내가 잘 기억하는건지는
    모르지만 그도 크리스찬이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를 다니지는 못했겠지만 그를 버티게 한 힘은 기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물론 내가 잘못
    알고 있는지 모릅니다. 신앙이 아닌 모성의 힘으로 버티고 버텼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해도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해 주신다는 로마서 말씀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요. 오늘 시인은 “도와 달라는 나의 부르짖음이 주께
    이르게 하소서”라는 간청으로 기도를 시작합니다. 우리의 처지를 아시는 주님께서 도와 주실 줄로 믿습니다. 내 힘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요, 내 의지로 내 마음이 꺾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아시는 주님의 선하심에 의지할 뿐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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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신실한 믿음은 증거로 보여지는 것 같으나, 동시에 고난과 인내가 요구 됩니다. 마치 금의 제련과정과 같이 믿음도 인내와 고난으로 인해서 더 신실한 믿음이 되는 듯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더 신뢰할 수 있는 믿음과 은혜를 구하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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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3년의 긴 세월을 침묵하시는 주님! 그래도 계속 기도하는 마음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실제로 주님 사랑밖으로 나갈 적당한 장소가 없습니다. 신실 하신 주님을 의지합니다, 가장 적절한 시간에 가장 적절한 기도 응답을 믿습니다. 고민과 실망보다 더 크신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내일의 소망을 기다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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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제가 살아있는것은 제가 아직 할일이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내가 세상에 있고 없고 내 가족에게 최고의 선택을 하실 당신임을 것을 믿습니다. 제가 오로지 의지할수 있는 전지전능한 주님이시여. 이 걱정많고 육신이 나약한 저를 당신의 품안에 받아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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