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106편은 제 4 권의 마지막 시편이면서 바로 앞에 나오는 105편과 대비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훑어 보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노래했던 105편에 비해, 106편은 이스라엘이 역사 속에서 행해 온 반역의 행동들을 회상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반역을 강조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더욱 부각됩니다.
먼저 시인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하면서 자신과 자신의 백성을 구원해 달라고 청합니다(1-6절). 시인의 눈은 자기 자신에만 갇혀 있지 않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기를 소망하면서 자신도 그 안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47절을 보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런 처지에 있게 된 것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하나님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시인은 조상들이 얼마나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죄악의 길에 빠졌는지를 회상합니다(7-46절). 그들의 고집스러운 죄성은 출애굽과 광야 유랑 중에 극적으로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이적을 행하여 그들을 인도 하셨지만, 그들은 너무도 빨리 그 은혜를 잊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습니다. 그 반역의 역사 끝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망하게 하셔서 여러 나라로 흩어져 살게 하셨습니다.
43절과 44절은 이 모든 역사에 대한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자기들 생각대로 행함으로 그분을 거역했고, 그로 인해 비참한 운명에 처했으며, 그런 운명에 처할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여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조상들과 맺은 언약 때문입니다(45절).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 모세를 통해 그리고 다윗을 통해 여러 번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당신을 거역하고 배반하기를 거듭하는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시인이 이렇게 길게 역사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유는 그들이 동일한 역사를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조상들처럼 하나님을 거역하여 악을 행했고, 그로 인해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댈 것은 하나님의 언약 뿐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부르짖어 구할 때 그분은 조상들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자신들에게도 구원을 베풀어 주실 것이라고 믿었기 떄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 하고는(47절) 온 백성에게 “아멘”으로 화답 하라고 청합니다(48절).
묵상:
이 시편을 읽으면서 우리는 자신의 삶을 보아야 합니다. 시인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상하면서 자신의 세대가 과거의 역사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 역시 그 사실을 인식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받은 은혜와 축복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은혜와 축복을 너무도 쉽게 잊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생각대로 행하여 비참한 지경에 빠집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주셨지만,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습니다”(15절)라는 말은 인간 실존의 본질을 꿰뚫는 말입니다. 우리가 고집스럽게 요구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주시지만 우리의 영혼은 파리하게 야윕니다. 영혼의 허약해지면 물질적인 축복은 재앙이 되어 버립니다. 이 말씀은 오늘 풍요의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 세대에게 더욱 진실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맺어진 새로운 언약을 기억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소망을 두었고 시인도 유일한 소망으로 삼았던 언약은 마침내 폐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이사야와 예레미야를 통해, 때가 오면 옛 언약은 파기되고 영원한 새 언약이 맺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새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맺어졌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그 영원한 언약 안에 있습니다. 그 언약은 우리를 새 사람으로 변화시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는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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