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이 시편으로써 제 5 권이 시작됩니다. 이 시편은 공적 예배 중에 교독문 혹은 교독송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주님께 감사드려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라는 후렴구가 네 번 반복되고(1-3절, 8절, 15절, 21-22절), 후렴구가 끝날 때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신 행동이 네 번 묘사됩니다(4-7절, 9-14절, 16-20절, 23-42절).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묘사하는 중에 “그들이 그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6절, 13절, 19절, 28절)라는 어구가 또 네 번 반복됩니다.
앞에 나오는 105편과 106편은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과 광야 유랑 역사를 서술하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한 반면, 107편은 좀 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상황을 묘사하면서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때로 이유도 없이 고난 당할 수 있고(4-7절, 23-42절) 때로 스스로 악을 선택했기 때문에 고난 당할 수도 있습니다(9-14절, 16-20절). 어떤 이유로 당하는 고난이든지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구원해 주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기에 거룩하고 선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을 특별히 선대하시고 인자하게 대하십니다. “높은 자들”(40절) 즉 권력이나 부 혹은 탁월한 실력으로 인해 교만해진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의지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장식품으로 사용할 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선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때로 낮아지고(12절) 비천해지고(39절) 가난해질(41절)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고, 당신을 의지하고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자비의 손길을 베푸십니다.
이런 근거에서 시인은 마지막으로 “지혜 있는 사람은 누구냐? 이 일들을 명심하고, 주님의 인자하심을 깨달아라”(43절)고 외칩니다.
묵상: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신비 중 하나는 우리가 낮아지는 만큼 그분은 더 선명하게 보이고 약해지는 만큼 그분은 더 강하게 역사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스스로의 능력과 수단으로 나 자신을 세우면 하나님은 그만큼 나에게서 멀어집니다. 하나님이 멀리 가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능력에 의존하는 정도만큼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축소하는 것입니다. 낮은 사람, 무력한 사람, 가난한 사람 혹은 비천한 사람이 높은 사람, 유력한 사람, 부한 사람 혹은 귀한 사람에 비해 하나님을 만날 가능성이 훨씬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에서 잘 나가는 것은 모두가 바라는 일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위험한 지경으로 접근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분입니다. 다윗은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평생토록 자신을 추적하고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시 23:6). 무한정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 앞에 열려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의지하기 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세우려 합니다. 그래서 높아지고 강해지고 부해지기를 힘씁니다. 그 사실에 대해 시인은 “사람이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 살며, 고통과 쇠사슬에 묶이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가장 높으신 분의 뜻을 져버렸기 때문이다”(10-11절)라고 갈파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판 구덩이 속에 빠졌을 때라도 하나님을 향해 손을 뻗으면 다가와 건져 주시는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에게만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자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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