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이 시편의 저자는 다윗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으로는 ‘탄식시편’에 속하지만, ‘저주기도’(6-15절)가 중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먼저 다윗은 하나님께 “잠잠히 계시지 마십시오”(1절)라고 기도합니다. 자신의 억울하고 분한 사정을 살피시고 바로잡아 달라는 호소입니다. 그는 지금 “악한 자와 속이는 자”(2절)로부터 근거도 없는 비난과 고소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들을 사랑하여 그들을 위하여 기도를 올리건만”(4절) 그들은 “선을 오히려 악으로 갚고, 사랑을 미움으로 갚습니다”(5절).
이어서 다윗은 그 사람에 대한 저주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립니다(6-15절). 여기서의 “그”(단수)는 다윗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사람들 전체를 가리킵니다. 다윗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악담과 저주를 하나님 앞에 쏟아 놓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얼마나 오래, 얼마나 억울하게 당했기에 이렇게까지 악담을 퍼부을 수 있나 싶습니다. 속으로 삭이고 삭여 왔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한 것 같습니다. 그는 절제를 상실하고 마음 깊은 곳에 쌓여있는 분노의 찌꺼기까지 다 쏟아 놓습니다.
16절부터 20절까지에서 다윗은 자신이 그 사람에 대해 저주의 기도를 드리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 생각은 하지 않고 저주를 입에 달고 삽니다. “가난하고 빈곤한 자”(16절)은 하나님을 믿고 의롭게 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저주의 기도를 올리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에게 퍼부은 저주가 그 자신에게 돌아가게 해 달라는 청이라 할 수 있습니다.
21절부터 29절까지에서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선대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는 먼저 자신이 얼마나 불쌍한 처지에 있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원수들의 모함에 사람들은 자신을 벌레 보듯 하고, 그로 인해 그의 마음과 몸은 모두 쇠약해졌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그에게 유일한 희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분에게는 “한결같은 사랑”(26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자신이 이렇게 망하고 만다면, 그것은 주님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이런 기도 끝에 다윗은 영적인 힘을 회복합니다. 그는 다시금 하나님을 찬양할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한결같은 사랑으로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30-31절).
묵상:
오늘의 시편은 6-15절에 나오는 저주 기도로 유명합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바울 사도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 기도를 읽으며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룩한 성경에 이토록 지독한 악담의 기도가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저주시편들이 시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역설적 선물’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자신의 감정에 정직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우리 내면에 숨겨져 있는 모든 생각과 감정을 다 아시는 분입니다. 그분 앞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우리는 전신 MRI 기계 앞에 서는 것처럼 자신의 내면을 다 열고 그분 앞에 서야 합니다. 지독한 분노가 마음 속에서 꿈틀거릴 때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내놓아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감정에 압도당합니다. 감사와 감격에 압도 당하여 춤을 추면서 찬양하기도 하지만, 분노와 앙심에 압도 당하여 입에 담기 힘든 악담을 쏟아 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주시편은 ‘과정 중에 있는 기도’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주가 기도의 결론이 아닙니다. 오늘의 시편에서 보듯, 자신의 감정에 정직한 기도는 결국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로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 중에 마음에 쌓인 분노가 해소되었기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되찾고 찬양하고 싶은 열정이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감정에 정직하게 기도할 때에만 일어날 수 있는 변화입니다. 마음에는 분노를 가득 품고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거룩한 말로 기도 시간을 채운다면, 그 사람의 마음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기도는 무엇보다 먼저 기도자 자신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주시편은 우리의 기도에 대해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는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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