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장 12-26절: 새로운 선민

해설:

예수님의 승천은 안식일에 올리브 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이 사라지신 후 사도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묵고 있던 다락방(마지막 만찬을 나누었던 곳)으로 올라가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동생들과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에” 힘썼습니다(14절). 예수께서 부탁하신 대로 성령의 세례를 기다리며 기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남동생만 넷이 있었는데(막 6:3; 눅 8:19), 그들은 부활 사건 후에 형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됩니다. 예루살렘의 ‘다락방 기도 모임’에 모인 사람들이 백이십 명쯤 되었습니다(15절). 

함께 모여 기도하던 중에 그러던 베드로가, 가룟 유다가 성경의 예언대로 주님을 배반하고 멸망하고 말았으니 그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우자고 제안 합니다(16-22절). 예수께서 당신을 따라 다니던 많은 제자들 중에서 열둘을 따로 세운 이유는 새로운 이스라엘을 일으키신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혈통으로서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그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열두 사도는 새 이스라엘의 족장인 셈이었습니다. 따라서 가룟 유다의 죽음으로 인해 생긴 공백이 채워져야 했습니다. 

그들은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로부터 예수께서 우리를 떠나 하늘로 올라가신 날까지 늘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들”(21절) 중에서 두 사람을 선정했습니다. 그들이 요셉과 맛디아입니다. 신도들은 두 사람을 두고 기도한 다음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사도로 세웁니다. 유대인들은 돌에 표시를 한 다음 작은 항아리에 넣어 흔들어 처음 튀어 나오는 돌로 결정하는 방식의 제비뽑기를 했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할 모든 일(이성적인 검토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을 한 다음에 최종 결정을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묵상: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여 선민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려는 계획 안에서 이스라엘이 선택되었고, 그 뜻을 이루도록, 언약하신 대로 가나안 땅을 주셨고, 율법과 예언과 성전을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택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요 의무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삶으로써 거룩한 제사장의 나라가 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책임을 방기했고 그 의무를 외면했습니다.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통해 그들을 돌이키려 하셨지만 그들의 패역한 마음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시고 그들에 대한 선택을 취소하셨습니다. 하지만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은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태초부터 인간을 사랑하기로 예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백성을 택하여 새로운 언약을 맺으셔서 구원 계획을 완성하겠다고,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에 따라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분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 중에 열둘을 택하여 제자로 삼으시고 나중에 사도로 보내신 이유는 그들을 통해 새로운 이스라엘을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새 계약을 완성하셨습니다. 부활 승천 하신 후에 베드로가 열둘의 수를 채우자고 제안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부활 승천 하신 후에야 베드로는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오셨는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후에 베드로 사도는 믿는 이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벧전 2:9)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새로운 선민으로서 다른 믿는 사람들과 연합하여 거룩한 제사장의 나라로 살아가도록 부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감당할 수 없는 고귀한 영예이며 또한 무거운 책임입니다.    

5 responses to “사도행전 1장 12-26절: 새로운 선민”

  1. 마땅히 죽어야하는 인생에게 십자가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만은, 아직도 세상이 추구하는
    교만과 위선이 마음속에서 데모를 하고 있습니다. 온전히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 발자취를
    따라 걷기를 원합니다, 온 마음과 정성으로 항상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성도들과 세상을 버리고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뒤를 따르는 오늘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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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예수님의 승천 후에 그 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기에 힘쓰며 성령을 기다리 듯 어려운 일 앞에서 함께 모여 기도하며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기도하며 제비를 뽑아 대처하듯 제비보다 기도가 앞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 안에 주님의 나라를 세워가며 새 나라와 새 땅이 이루어 지기를 간구합니다, 깨어 기도하는 하루로 은총내려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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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성경 (경전)으로 읽는지 성서 (책)로 읽는지 구분하고 싶은 아침입니다. 마태 복음서는 가롯 유다가 스승의 죽음을 괴로와하며 죄책감 속에서 목을 매달아 죽은 것으로 복음서는 기록하는데 오늘 본문은 밭에서 거꾸로 떨어져 (투신?) 장기가 파열된 상태에서 죽었다고 기록합니다. 지엽적인 부분입니다. 유다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묵상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성경대로” 하자고 말 할 때는 좀 더 신중하고 값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유다의 공석을 메꿀 다음 사람을 뽑는 과정을 봐도 성경은 한 길, 한 방법 만을 고집하는 매뉴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과 맛디아 두 사람이 (후보로) 추천 되었다지만 자격 요건이나 추천 방식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자격이라고 할 만한 것은 예수님의 세례 때부터 승천까지 함께 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뿐입니다. 그런 사람이 요셉과 맛디아 둘 뿐이었는지, 여럿이 있었지만 어떤 조건 (우리는 모르는)을 따라 걸러내다 보니 이들 둘이 남게 된 것인지 사도행전의 기록 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언제라도 다른 것,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까지의 40일간의 기록은 상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만난 사람들은 증인으로 ‘다시’ 살았습니다. 그들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제자에서 사도로, 학생에서 증인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의 새로운 여정을 도와줄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깨달았 듯 성령을 통해 예수님을, 하나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최종적이거나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봅니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이요 내일의 예고편처럼 보이지만 오늘의 몫이 따로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오늘의 양식, 오늘의 깨달음을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모르는 시간 앞에서 마음을 엽니다. 주님을 향해 마음을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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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실한 사도 선츨과정을 보며 탕자의 비유에서 큰 아들을 생각합니다. 그의 마음은 장자로서의 자부심, 재산의 독점권, 복종과 충성심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는 자격없는 둘째에게는 아버지의 사랑도, 재산의 분할권도 주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둘을 모두 사랑하셨습니다. 피로 이루어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절대로 없어지는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를 자기만 독점할수 있다는 유대인에게 그것은 오해이며 그 잘못된 생각을 풀라 말씀하십니다. 내 자신이 큰아들이 가진 바로 그 특권의식에 빠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남의 눈차보며 세상과 타협하면 안되지만 또한 남을 정죄하지 않게 하소서. 저를 겸손하게 또 감사하게 하소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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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직도 내 마음속에 유다와 같은 성품이 남아 있는지 말씀의 거울에 비춰봅니다. 주여! 만약 그런마음이 아직도 있다면 회개의 약으로 치료하여 주시고 이번 선교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보일때 그들과 선교팀 모두에게 같은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하나님을 아는 모두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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