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장 1-13절: 성령께서 드러나실 때

해설:

“오순절”은 히브리인들의 추수감사절입니다. 유월절 이후 오십일째 되는 날로서 “칠칠절”(신 16:10) 혹은 “맥추절”(출 23:16)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칠일째 되는 날에 일어난 일입니다. 신도들이 다락방에 모여 일 주일 동안 기도하며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선물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오순절이 시작되는 날, 기도하기 위해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신비한 일이 일어납니다(1절). 그들은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를 듣습니다(2절). 또한 불길이 솟아 오를 때 생기는 불의 혀처럼 보이는 것들이 기도하는 사람들 위에 임합니다(3절). 누가는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그들에게 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들은 일제히 배운 적도 없는 외국어를 말하기 시작합니다(4절). 누가는 그것이 성령께서 시키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오순절은 ‘순례 축제’(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려야 하는 절기)이기에 당시 예루살렘에는 세계 각국에서 살던 유대인들이 와 있었습니다(5절). “경건한 유대인”은 이방 지역에서 살고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들은 사도들과 신자들이 각각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랍니다(6-8절).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당시 로마 제국의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9-11절). 

이 사건에 대해 사람들은 두 가지의 반응을 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놀라고 당황합니다(12절).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13절)고 조롱 하기도 했습니다.

묵상: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은 두 가지 차원에서 보아야 합니다. 첫째, 이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흐름 안에서 유일회적 의미를 가집니다. 이 사건은 종말에 대해 예언자들을 통해 주신 약속(욜 2:28-32)이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여기서 “종말”은 ‘말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결정적인 시간을 뜻합니다. 승천하신 예수께서도 그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로써 새로운 이스라엘 즉 교회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새언약의 피로 구속된 새로운 공동체가 탄생한 것입니다. 

둘째, 이 사건은 보이지 않는 성령의 임재가 드러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보여 줍니다. 성령께서는 태초부터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일해 오셨습니다. 그분이 임할 때면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때에 일어난 일들(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음,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형상을 봄, 배우지 않은 언어를 말함)은 성령께서 임하실 때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의 예입니다. 그러한 현상들은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변화시키고 생의 진로를 바꾸어 놓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사람 그리고 성령의 다스림 아래에 있는 교회에는 그런 신비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로 인해 마음 가득 경외감을 안고 하나님을 우러러 찬양하는 것이 우리의 예배입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돌아보는 것이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아, 이런 믿음, 이런 공동체를 소망합니다. 

5 responses to “사도행전 2장 1-13절: 성령께서 드러나실 때”

  1. 항상 피부로 느끼지 못하지만,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꼭 붙잡고 살기를 원합니다, 오래전
    성령의 이적 들을 보고 체험 했습니다만 그 거룩한 체험이 흐려져가는 초라한 처지입니다.
    Ashy Wednesday 입니다. 그동안 세속적이고 이기적으로 살아왔던 삶을 온전히 버리고
    믿음의 성도 들과 함께 지금부터라도 함께하시는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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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비둘기 같이 임한 성령이 오순절에 불길과 같은 성령으로 임하면서 교회의 공동체가 이루어져 그 안에 우리를 포용하시는 성령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어리석은 죄를 범하지 않게 깨어 기도하로록 이끌어 주시고 성령의 지침에 어긋나지 않는 언행을 통해 주님을 경외하게 하시옵소서.
    오늘 하루의 삶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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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애즈베리 신학교에 임하셨던 성령님! 사귐에 교회에도 아니 온 나라, 세계 열방에 임하셔서 전쟁이종식 되고 고통받고 있는 백성들에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또한 이제까지 잘못살아 왔음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고 성령님께서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내 마음의 왕으로 오셔서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치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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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성령이 오순절 다락방에 임하였을때, 기이한 현상들로 인해서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동일한 사건이지만, 어떤 이들은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어떤이들은 술에 취하였다며 비방합니다. 나는 어떠한 그룹인지 생각해봅니다. 세밀한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하나님의 뜻과 역사하심에 반응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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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오늘 본문은 한곳에 모인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언어와 다른 외국어로 말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말의 내용은 하나님이 행하신 크신 일 (11절)입니다. 제자들에게 일어나는 이 기이한 일을 지켜보는 군중들은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언어가 중심이 되는 사건으로 바벨탑 사건이 있습니다. 그 때는 서로 알아듣지 못해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같은 말을 쓰던 사람들이 소통을 하지 못하게 되고 뿔뿔이 흩어지는 결과를 낳습니다. 본문의 제자들은 배우지도 않은 여러 지방 언어를 사용해 하나님을 전함으로 거기에 모여든 청중들이 다 알아 듣습니다. 바벨탑과 반대되는 일입니다. 바벨탑의 이야기는 성령의 역사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는 하지만 성령 사건의 예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오순절 이야기가 성령의 역사를 말할 때 우선적으로 떠오릅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임한 제자들에게 일어난 일이 방언 (여러 지방의 말)을 하는 능력 한 가지로 그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방언이 성령 체험의 증거라고 여깁니다. 방언을 할 줄 아는지, 방언 기도를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 합니다. 목회자를 청빙하는 인터뷰에서 이것을 묻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기도회 중에 누군가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방언을 할 줄 모르는 나는 기도가 싹 중단되고 마는 것을 여러번 경험했습니다. 기도가 ‘막힙니다.’ 그의 방언 소리만 들리고, 무슨 말일까, 무엇을 구하는걸까, 본인은 알까, 나는 왜 방언을 못할까, 구해 본 적은 있나, 지금부터라도 방언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나…이런 생각이 계속되어 결국은 기도를 더 이상 못하고 맙니다. 성령 충만한 상태가 오늘 본문과 꼭 같은 상태라는 생각에서 이제는 좀 자유해졌습니다. 성령을 보내신다는 예수님의 약속이 나에게도 이루어졌음을 이미 경험했습니다. 성령이 임하고 일 하시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이 방언을 하고 못하고 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은 하루 내내 생각하는 것 그것이다 We are what we think about all day” 라는 말을 합니다. 내가 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도 사순절의 좋은 묵상이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순종, 성령님의 인도를 매일 매일 발견하고 경험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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