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장 14-36절: 세상을 보는 눈

해설:

신도들에게 일어난 일들이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고 여러가지 의혹이 제기되자 베드로가 사도들을 대표하여 설교합니다. “목소리를 높여서”(14절)라는 표현을 미루어 보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의 설교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한 해석이고(14-21절), 둘째는 예수님에 대한 설명입니다(22-36절). 

먼저, 베드로는 자신들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 다음(15절) 요엘의 예언(욜 2:28-32)을 인용합니다. “마지막 날”(개역개정 “말세”)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날’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제한 없이 부어 주시는 날이 올 터인데, 그것이 ‘구원의 날’이 시작되었다는 징표라는 것입니다. 요엘의 예언이 지금 그들 가운데 성취되고 있으며, 자신들이 말하는 방언은 성령께서 시켜서 하는 예언이라는 뜻입니다. “예언”의 원래 의미는 미래의 일을 미리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도들이 성령 충만하여 방언으로 말한 내용은 “하나님의 큰 일들”(11절)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의 이적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 주셨다고 말합니다(22절). 하나님은 미리 정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죽음에 넘겨 주셨는데, 그 일은 유대인들이 로마인들(“무법자들”)의 손을 빌어 실현시켰습니다(23절).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셨습니다(24절). 여기서 베드로는 시편 16편 8-11절을 인용합니다(25-28절). 그는 이 시편에서 다윗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언했다고 해석합니다(29-31절). 그 예언대로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베드로와 사도들은 그 일의 증인입니다(32절). 하나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당신의 오른쪽에 앉히셨고, 예수님은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진상입니다(33-33절). 여기서 베드로는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합니다(34-35절). 그것 역시 다윗이 예언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말한 다음, 베드로는 이스라엘의 온 집안에게,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증언합니다(36절).

묵상:

베드로는 지금 그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구약의 예언에 비추어 해석합니다. 신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방언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요엘을 통해 예언한 사건이 성취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제한없이 부어 주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시는 날을 정하셨는데, 그날이 왔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께서 약속하신 일입니다. 그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이루어 오신 거대한 구원 계획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인간사와 세상사를 보는 베드로의 시각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 결정적으로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도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태초부터 진행되어 온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계획을 보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는 인간사와 세상사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 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기껏해야 멀리서 팔짱을 끼고 지켜 보다가 가끔 개입하신다고 믿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그분을 통해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도 그의 시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그가 열망했던 모든 소망과 기대가 산산히 깨어지고 난 다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새로이 회복되고, 승천하신 주님의 약속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야 베드로는 비로소 현실을 제대로 보게 되었습니다. 인간사외 세상사는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계획 안에 있으며, 우연이나 사고처럼 보이는 일들도 실은 하나님의 다스림과 섭리 가운데 있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이처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와 돌보심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 눈으로 일상사를 보고 그분의 손길을 보는 것입니다. 

5 responses to “사도행전 2장 14-36절: 세상을 보는 눈”

  1. 영의 시력을 원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꿈에서라도 보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과 항상 동행하고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를 바랍니다. 함께하시는 거룩한 영을 피부로 느끼며 아들과
    딸들은 예언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노인들은 거룩한 꿈을 꾸는 가정과 교회와 세상이
    속히 이뤄지기를 기도합니다. 새하늘과 새땅의 소망을 세상에 일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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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주님! 세상을 바라볼때 예수님의 눈과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성령께서 내마음속에 임재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능력과 힘으로는 쓰나미 처럼 밀려오는세상 세파를 헤처나갈 수 없으니 도와주시옵소서. 성령께서 도와 주심을 믿고 오늘도 담대하게 나아 갑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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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애즈베리 신학교의 예배가 여러 기사를 통해 알려지고 있습니다. 수요예배를 마친 한 학생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그의 주변에 있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기도가 이어지고 예배는 계속되었습니다. 연합감리교단에 뿌리를 둔 이 신학교에서는 과거에도 여러번 부흥회가 일어났는데 이번 부흥회는 특별히 밀레니얼 제너레이션 지 ‘Gen Z’ 들이 중심이며 그들의 신앙에 획기적인 사건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과거 역사를 볼 때 부흥회 뒤에 괄목할만한 사회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에서 이번 부흥회 역시 이후에 있을 변화와 움직임에 기대가 실립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사도들 사이에 일어난 성령의 움직임이 그리스도가 주님이요 그리스도임을 알리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근거로 요엘의 예언과 다윗의 시를 듭니다. 베드로 본인의 신앙도 이 사건을 통해 방향이 전환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공개적으로 단호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같은 고백을 하지만 현실의 상황은 전혀 다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는 것이 매우 위험한 사회에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미지근한 신앙을 단단히 세워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발 붙이고 사는 땅의 온갖 어려움과 위험을 이겨낼만한 용기 있는 결단을 하도록 도와주는 일도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데까지 가도록 격려하고 부추긴 것입니다. 지난 주에는 게티 뮤지엄에서 봉사를 했습니다. 1시간 안내한 뒤 잠시 쉬었다가 다른 그룹을 또 1시간 안내하는 스케쥴이어서 동기 도슨과 잠시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십년 가까이 간호사로 일하면서 미술사 석사과정도 밟고 있는 친구인데 고등학생 아들이 작년 가을부터 원래 앓던 우울증이 더욱 심해져 걱정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자살 방지 플랜 suicide prevention plan’을 만들어 실행하고 있다는 대목에서 내 가슴이 다 철렁했습니다. 아들이 카운슬러와 함께 플랜을 만들어 식구들과 학교와 공유하며 내용을 점검하고 숙지한다고 했습니다. 한 예로 집안에 날카로운 칼이나 가위 등을 두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주방에 칼이 없어 식재료를 스푼으로 잘라야 하니 얼마나 불편하겠냐며 쓸쓸하게 웃습니다. 십년 전에 이혼한 전남편이 우울증을 앓고 있고, 자기도 엄마한테서 받은 우울병력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부모 양쪽이 다 그러니 아들이 우울증을 앓는 것은 백퍼센트 정해진 일이아니겠냐며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 그것이 자기 우울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습니다. 주말에는 미국 연합감리교회 친구가 남편의 심리 변화에 대한 최근의 일을 상세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여선교회 임원으로 봉사할 때 많이 가까와진 친구인데 (미국 사람이니까 친구라고 하지 나이가 나보다 훨씬 많습니다) 지난 5년 사이에 남편이 건강이 나빠지면서 정신적으로도 심각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노화에 대한 증오라는 말이 맞는지 모르지만 자신이 늙고 약해져 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자기 자신과 부인, 자녀들을 미워하고 서운해하는 일이 부쩍 늘어 났습니다. 최근에는 집에서 살기 싫다고, 집을 나가 홈리스로 ‘자유롭게, 간섭 안 받고’ 살겠다며 난동을 부리다 경찰까지 불러야 하는 지경이었다고 했습니다. 우울한 주말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 속에도 성령님이 간섭하신다고 믿고 싶습니다. 지금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믿고 싶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성령의 도움을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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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성령의 충만함이 개인적인 삶과 가정, 교회와 사회에 있기를 소망하는 하루입니다. 그리하여 그 성령의 능력과 열매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삶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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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기적을 믿지 못하는 태도, 냉소적이고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자세, 남을 배려하는 예의와 친절함의 뒷면에 사회에서 교양없다는 비웃음을 걱정하는 두려움, 아래사람에게는 권위를 강조하며 위사람에게 보살핌을 기대하는 이중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는 저입니다. 백만달러 로토 당첨권을 아무 댓가없이 준다고 했을때에도 이렇게 담담할지. 내가 정말 이것이 굉장한 소식이라고 믿는다면 문을 박차고 모든 사람들에게 행운을 받으라고 알리고 있지않을까요? 구원의 가치는 1억 1조보다 더 귀한 혜택일진데 내마음은 왜이리 감사가 없고 무덤덤한가. 베드로가 감격으로 증거하는 모습을 저에게도 달라고 기도합니다. 에즈베리의 울며 기도하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가식이 없는 진정한 회개와 감격의 제 모습을 소망합니다. 힘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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