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3장 11-26절: 영적인 무지

해설:

장애인이 온전해지는 사건으로 인해 성전 뜰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몰려 듭니다. 그들은 그 일로 인해 놀랐고 이상히 여겼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솔로몬 행각(11절, 성전 뜰을 에워싸고 있던 외벽에 세워져 있던 기둥들)에서 그들에게 설교 합니다(12-28절). 오순절 날에 성령 강림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설교했던 것처럼, 장애인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그 장애인에게 일어난 일이 자신들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암님을 밝힙니다(12절). 그러면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조상의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분인데, 그들이 그분을 죽게 했다고 책망합니다(13-15절).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려 내셨습니다. 지금 그 장애인에게 일어난 일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일입니다(16절).  

그들은 그들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무지합니다(17절). 그래서 나사렛 예수가 누구신지 모르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아야만 한다는 예언을 이루셨습니다(18절). 그들은 무지하여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은 그 죄를 이용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 다음, 베드로는 “여러분은 회개하고 돌아와서, 죄 씻음을 받으십시오”(19절)라고 촉구합니다. 그래야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20절). 그분은 성경의 예언대로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21절) “하늘에” 즉 하나님의 차원에 머물러 계실 것입니다. 그것은 오래 전 모세를 통해 주신 예언(신 18:15, 19절)하신 일입니다(22-23절). 그뿐 아니라 사무엘 이후로 나타난 많은 예언자들이 그 사실을 예언하였습니다(24절). 

지금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예언자들의 자손입니다(25절). 그들은 또한 ‘복의 근원’으로 선택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25절). 예수 그리스도를 그 모든 예언과 약속을 이루기 위해 보내주신 분입니다. 그것을 안다면 마땅히 회개하고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26절).

묵상: 

장애인이 치유 받은 사건에 대해 해명하면서 베드로는 ‘무지’를 강조합니다. 그 사건을 통해 자신들에게 무슨 신통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주목하는 것은 그들의 무지 때문입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인한 것입니다. 주목할 대상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 중에 일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대로 당신의 “종”(13절, 21절)을 보내셨습니다. 그분이 이사야서 53장에 예언된 ‘고난의 종’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이 무지하여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서 죽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려내셨고 하나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분이 다시 와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예언자들을 통해 전해졌는데, 그들은 그 약속에 대해 무지합니다. 그 무지가 그들로 하여금 지금 그들 가운데서 움직이고 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보고 있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눅 10:23)고 하셨습니다. 영적인 눈이 밝아져서 나사렛 예수가 누구신지 알아보고, 지금 우리 가운데서 성령이 일하고 있음을 알아 보고,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회복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이들은 복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복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이 영적 실상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 “본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이 스스로 “본다”고 생각하기에 영적인 어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참된 지식에 이르기를 기도합니다. 

5 responses to “사도행전 3장 11-26절: 영적인 무지”

  1. 너무나 무지해서 하나님을 다 알수없지만 그래도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의 영광을 깨닫게 하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영혼에 깊이 각인해서, 사랑의 하나님을 믿음의 성도들과 함께 세상에 알려
    축복의 통로가 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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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인류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영적무지에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어둠에서 해방시켜 주심을 감사드리며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주님께서는 그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영적 어둠속에서 방황하며 자신을 신뢰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주님! 불쌍한 탕자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에게 사랑의 하나님을 전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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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 시대의 장애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오늘 우리를 옥죄는 걱정과 불안, 짐과 채무의 쇠사슬이 무엇일까요. 무엇에서 풀려 나야 할까요. 모든 물음에는 ‘정답’이 있고 정답은 하나 뿐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원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정의가 실종된 세상, 불구를 입은 공의에 생각이 미칩니다. 어디를 향해 뛰는지 생각해 볼 틈도 없이 그저 달리기만 하는 인생. 내가 바라는 것,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파악하기도 전에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잘해야 한다고 하는 것들을 먼저 알게 되는 현실. 이런 일이 계속 되면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따라 붙습니다. 사람마다 걸음의 폭과 속도가 있는데도 가상의 보조 맞추기에 열심을 냅니다. 낙오하면 안된다, 대오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명령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요.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과 우리가 원하는 것이 어긋나는 지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모두를 유익하게 하는 열심입니다. 사랑과 인내, 연민과 용서를 수시로 작동하는 시스템이 하나님의 방식인 반면 우리의 시스템은 승자독식, 부익부빈익빈의 원칙을 고수합니다. 짧은 시간의 묵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리라 기대하지는 않지만 부상을 입은 정의와 공의를 되살리는 길로써 희년의 정신을 꼽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희년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희년의 정신을 고도의 자본주의 세상에 젹용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 지혜를 주시기를 원합니다. 노동과 안식의 균형을 원하시고 예배와 코이노니아를 기뻐하시는 안식일의 주인께서 우리 시대의 장애를 회복시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예수의 이름에 의지해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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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눈이 어떤 것을 보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합니다. 캄캄하고 무지한 내 인생에 빛이 되어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그 예수그리스도로 인해서 내가 볼 수 있음을… 성령이 일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바라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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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인자하신 주님 저희를 긍휼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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