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베드로와 요한은 풀려나자 곧바로 신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자신들에게 있었던 일을 보고합니다(23절). 동료들은 두 사도의 이야기를 듣고 감격하여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24절). 24절부터 30절까지의 기도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도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시편 2편의 말씀이 그들 가운데 이루어졌다고 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다윗에게 성령을 보내어(25절) 시편 2편을 통해 “이방 민족”과 “뭇 백성”이 주님과 주님의 메시아를 대적하리라고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그 예언대로 헤롯과 빌라도(“이방 민족”)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뭇 백성”)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일어난 일도 그 예언에 따른 것입니다(26-28절). 그들이 겪고 있고 앞으로 겪게 될 모든 환난은 주님에 의해 예언된 것입니다. 따라서 놀라거나 두려워할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고백한 후,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29절). 그뿐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치유와 표징과 이적이 나타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30절). 기도를 마치자 그들은 진동을 경험합니다. 성령 체험에 자주 수반되는 현상입니다.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31절).
이 지점에서 누가는 예루살렘 교회의 상황을 한번 더 묘사합니다(32-35절).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믿음의 공동체 안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변화의 핵심은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소유를 기꺼이 내놓을 정도로 뜨겁게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34절)는 말로써 누가는 예루살렘 공동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잠시 임했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성령이 충만해지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경험하게 됩니다.
묵상:
성령의 역사는 죽어 있던 생명을 살려내는 일이고 인습의 장벽을 허무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저항과 반발과 박해를 불러 옵니다.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사탄이 자신의 왕국이 침탈 당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죽음의 상태에 머물러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도구로 삼아 성령이 하시는 일들을 방해합니다. 초대 예루살렘 공동체는 그 사실이 시편 2편에 이미 예언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성전 권력자들의 협박에 주눅들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용기를 얻었습니다. 저항과 방해와 박해에 맞서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은 그들을 더욱 강하게 잡아 주셨습니다.
사도행전은 믿는 이들을 통해 일어난 성령의 역사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성령의 역사에 대한 저항과 방해와 박해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성령은 사탄에 의해 노예된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인간의 죄악이 만들어낸 악한 구조와 제도와 조직을 분쇄하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언제나 사탄의 방해가 따릅니다. 성전 귀족들은 하나님을 지키기 위해 사도들을 박해한다고 생각했지만, 부지불식 간에 사탄의 도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사탄은 성령의 대적이 되지 못합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저항과 방해와 박해가 일어날수록 더욱 강해집니다.
성령의 역사를 막을 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믿는 이들이 자신 안에 거하는 성령의 임재를 부정하고 따르지 않으면 성령의 불은 꺼져 버립니다. 성령의 불이 꺼지는 것은 나도 죽고 세상도 죽게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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