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4장 35-5장 16절: 초대 교회의 첫 스캔들

해설:

초기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의 감화로 인해 뜨거운 사랑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서로 섬기며 살았습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에 따라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에게 맡겼고, 사도들은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주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누가는 대조적인 두 인물에 대해 묘사합니다. 한 사람은 키프로스 태생의 요셉입니다. 그는 레위 사람이었는데,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서 사도들에게 맡깁니다. 요셉은 나중에 바나바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위로의 아들”이라는 의미인데,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돌보는 일에 탁월한 은사를 드러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을 것입니다(4장 36-37절).

다른 인물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입니다. 그들은 다른 신도들처럼 자신의 소유를 팔아 사도들에게 맡겼는데, 그 돈의 일부를 숨겼습니다(1-2절). 어떻게 알았는지 베드로가 알고 그들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성령과 하나님을 속였다고 책망합니다(3-4절). 아나니아는 숨겨진 죄가 드러나자 충격을 받고 쓰러져 죽습니다(5절). 세 시간 쯤 지나서 그 아내 삽비라가에게도 동일한 일이 일어납니다(7-10절). 누가는, 그 일로 인해 “온 교회와 이 사건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크게 두려워하였다”(11절)고 적습니다. 

이것은 천국이 내려 앉았던 것 같은 예루살렘 교회가 맞은 첫 번째 위기입니다. 하지만 이 위기는 새로운 부흥을 위한 전기가 됩니다. 신도들은 성령의 역사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게 되었고, 모여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일에 더 열심을 냈습니다(12-13절). 그로 인해 믿은 사람의 수는 더욱 늘어났고, 사도들을 통한 이적과 기사는 더 많이 일어났습니다(14-16절). 

묵상: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는 ‘초대 교회의 스캔들’이라고 불리기에 충분합니다. 이 이야기를 읽는 우리에게도 이토록 충격적이니, 당시 신도들이 받은 충격은 얼마나 더 컸을까요? 거침없이 번져가는 들불을 보고 흥분해 있다가 그 불이 자신의 집을 불사르는 모습을 보고 넋을 잃는 장면을 상상하게 됩니다. 혹은 한 동안 흥겹게 진행되고 있던 잔치가 갑자기 파장을 맞는 듯한 장면입니다. 

두 사람이 죽음 당한 것은 베드로의 저주 때문이 아닙니다. 숨겨진 죄가 드러나자 심리적 충격을 받아서 절명한 것일 수도 있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죄는 재산을 다 바치지 않은 것에 있지 않습니다. 4절에서 베드로가 말하는 것처럼, 그 부부는 그 재산을 팔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재산을 팔아 바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따라 자신의 재산을 팔아 바치는 움직임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것이 성령의 역사임을 알았습니다. 그 거룩한 운동에 자신들도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감동과 감화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뒤쳐지고 싶지 않았던 그들의 욕심이었습니다. 그런 동기로 행한 일이었기에 그들은 재산의 일부를 숨기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지적했듯이, 그들의 행동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사탄의 유혹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바나바와 다른 신도들의 거룩한 실천을 보고 그 운동에 참여하고 싶었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먼저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했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인간적인 욕망을 제어하고 거룩한 열망을 심어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그들도 바나바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 것이고, 초대 교회 역사에 거룩한 발자취를 남겼을 것입니다.  

4 responses to “사도행전 4장 35-5장 16절: 초대 교회의 첫 스캔들”

  1. 모든것을 정확하게 아시는 주님께 체면채리고 정직하지못한 가련한 신세입니다. 세속적인
    유혹에 자주 너머지는 형편입니다, 십자가의 은혜없이는 한순간도 살수없는 존재입니다. 끝
    없이 크신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믿음의 식구들과 오직 보혈
    만이 구원의 길임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Like

  2. 주님! 이시간 간절히 원하옵는것은 내안에 성령이 충만하기를 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고 충만자들을 따라서 흉내낼때 사탄의 달콤한 꾀임에 넘어가 성령님을 속이는 어리석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자가 되지 않토록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Like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재산의 전부를 바치지 않아서, 혹은 전부인양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끔찍한 결말을 맞이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의 속을 훤히 다 보고 있는 것처럼 추궁합니다. 남편이 죽은 줄도 모르는 채 삽비라는 각본대로 거짓 대답을 하다 급사하고 맙니다. 아나니아 부부는 베드로와 공동체 앞에서 거짓말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실은 벌써부터 하나님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의 해설이 이것을 보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5장 1절은 아나니아 부부가 자기들의 땅 일부분을 팔았다고 전합니다. 전재산을 갖고 공동체로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아나니아를 꾸짖으면서 하는 말이 정확합니다. 재산권은 아나니아에게 있었습니다. 재산을 팔아야만 제자 공동체 일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입조건이 아닙니다. 요셉이 자기의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놓은 것을 보고 아나니아 부부도 똑같이 합니다. ‘복붙 – copy and paste’ 이기를 하고는 자기가 썼다고 거짓 주장을 하는겁니다. 논문 표절과 베끼기 스캔들의 중심은 허영심입니다. ‘…인 척’ 하는 마음, 자기 분수에 넘치는 명예욕을 허영심이라고 합니다. 내용은 그렇지 않은데 겉으로는 그런 척 보이려고 하는 욕심에서 나온 거짓 행동입니다. 아나니아는 예수를 정말 따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따르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이적과 변화의 현장에 자기도 있고 싶고, 이왕이면 가운데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앞섰는지 모릅니다. 누가는 당시 상황을 “사람들은 감히 믿는 사람들의 모임에 끼어들지 못했다 (13절)”고 전하면서 한편으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14절)는 상반된 말을 하기도 합니다. 결단을 하지 못해 망서리는 사람들이 있음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공동체 멤버는 아니어도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뜻일 수도 있겠습니다. 재산의 전부인가 일부인가 하는 질문은 외연과 함의의 예가 되기도 합니다. 재산의 양을 고민하며 주님 앞에 서는 것을 묻는 외연의 질문인지 아니면 헌신의 순도와 진실을 고민하는 질문인지를 보라는 말씀 같습니다. 베드로가 지나갈 때면 병자를 데리고 나와 그의 “그림자라도” 덮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단순하고 절실한 행동이 아나니아 부부의 계산을 부끄럽게 합니다. 계산하느라 바쁜 나의 모습을 봅니다. 키프로스 사람 요셉은 바나바라는 이름을 받습니다. 격려하는 사람 (son of comfort) 입니다.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격려하는 사람으로 사는 길을 묵상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Like

  4.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하나님,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교만하며 위선적인 행동과 마음이 제 안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긍휼로 불쌍히 여기시고, 겸손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사역이 되게 하소서.

    Lik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Blog at WordPress.com.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