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초기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의 감화로 인해 뜨거운 사랑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서로 섬기며 살았습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에 따라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에게 맡겼고, 사도들은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주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누가는 대조적인 두 인물에 대해 묘사합니다. 한 사람은 키프로스 태생의 요셉입니다. 그는 레위 사람이었는데,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서 사도들에게 맡깁니다. 요셉은 나중에 바나바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위로의 아들”이라는 의미인데,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돌보는 일에 탁월한 은사를 드러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을 것입니다(4장 36-37절).
다른 인물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입니다. 그들은 다른 신도들처럼 자신의 소유를 팔아 사도들에게 맡겼는데, 그 돈의 일부를 숨겼습니다(1-2절). 어떻게 알았는지 베드로가 알고 그들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성령과 하나님을 속였다고 책망합니다(3-4절). 아나니아는 숨겨진 죄가 드러나자 충격을 받고 쓰러져 죽습니다(5절). 세 시간 쯤 지나서 그 아내 삽비라가에게도 동일한 일이 일어납니다(7-10절). 누가는, 그 일로 인해 “온 교회와 이 사건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크게 두려워하였다”(11절)고 적습니다.
이것은 천국이 내려 앉았던 것 같은 예루살렘 교회가 맞은 첫 번째 위기입니다. 하지만 이 위기는 새로운 부흥을 위한 전기가 됩니다. 신도들은 성령의 역사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게 되었고, 모여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일에 더 열심을 냈습니다(12-13절). 그로 인해 믿은 사람의 수는 더욱 늘어났고, 사도들을 통한 이적과 기사는 더 많이 일어났습니다(14-16절).
묵상: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는 ‘초대 교회의 스캔들’이라고 불리기에 충분합니다. 이 이야기를 읽는 우리에게도 이토록 충격적이니, 당시 신도들이 받은 충격은 얼마나 더 컸을까요? 거침없이 번져가는 들불을 보고 흥분해 있다가 그 불이 자신의 집을 불사르는 모습을 보고 넋을 잃는 장면을 상상하게 됩니다. 혹은 한 동안 흥겹게 진행되고 있던 잔치가 갑자기 파장을 맞는 듯한 장면입니다.
두 사람이 죽음 당한 것은 베드로의 저주 때문이 아닙니다. 숨겨진 죄가 드러나자 심리적 충격을 받아서 절명한 것일 수도 있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죄는 재산을 다 바치지 않은 것에 있지 않습니다. 4절에서 베드로가 말하는 것처럼, 그 부부는 그 재산을 팔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재산을 팔아 바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따라 자신의 재산을 팔아 바치는 움직임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것이 성령의 역사임을 알았습니다. 그 거룩한 운동에 자신들도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감동과 감화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뒤쳐지고 싶지 않았던 그들의 욕심이었습니다. 그런 동기로 행한 일이었기에 그들은 재산의 일부를 숨기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지적했듯이, 그들의 행동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사탄의 유혹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바나바와 다른 신도들의 거룩한 실천을 보고 그 운동에 참여하고 싶었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먼저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했습니다.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인간적인 욕망을 제어하고 거룩한 열망을 심어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그들도 바나바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 것이고, 초대 교회 역사에 거룩한 발자취를 남겼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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