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6장 8-14절: 구제 사역자에서 말씀 사역자로

해설:

7절과 8절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적인 간격이 있습니다. 스데반은 구제 사역을 위해 세움 받은 일곱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교인들을 돌보고 구제 양식을 나누어 주는 일에 전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점차로 사역을 넓혀 갑니다. 그가 말씀을 가르치고 전할 때 “은혜와 능력”(8절)이 드러났고 여러 가지 이적과 기사가 일어납니다. 스데반은 주로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에 예루살렘에는 “리버디노 회당”(개역개정 “자유민들 회당”)이 있었습니다. 지중해 연안의 여러 지역에서 노예로 살다가 해방되어 예루살렘에 와서 사는 사람들이 모이던 회당이었습니다(9절). 스데반이 이들에게 가서 말씀을 전하지만 그들은 반발하며 논쟁을 걸어 왔습니다. 하지만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10절) 말한 까닭에 논쟁으로 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스데반을 산헤드린 공회에 고발합니다(11-12절). 

그는 산헤드린 공회에 소환을 받아 재판정에 서게 되었는데, 사주를 받은 거짓 증인들이 공회 앞에서 그를 모함합니다(13-14절). 공회 앞에 피고의 신분으로 선 스데반은 너무나 평온한 모습이었고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 같았다”(15절)고, 누가는 전합니다. 

묵상:

스데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성령께서 일하시는 방법을 봅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세움 받고 구제 양식을 나누어 주는 일에 전념합니다. 그 이후, 성령께서는 그의 사역의 범위를 점차로 확장시켜 주십니다. 스데반이 말씀을 가르치고 전도하는 일에 욕심을 낸 것이 아니라 성령께 이끌림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말씀과 전도와 치유의 은사를 부어 주셔서 많은 이들을 회개하게 했습니다. 이 본문에는 리버디노 회당 사람들의 반발에 대해서만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 그는 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데반을 통한 성령의 역사도 반발과 박해를 불러 왔습니다. 성령께서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실 때 회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부정하고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새벽에 닭이 울면 자리를 개고 일어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데, 닭을 죽여 없애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스데반을 만사형통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겪지 않아도 될 박해와 환난을 겪게 만듭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그런 상황에 괘념치 않습니다. 그가 성령 안에서 누리고 있던 평안은 공회 앞에 선 그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미 죽고 사는 것을 초월해 있었던 것입니다.   

4 responses to “사도행전 6장 8-14절: 구제 사역자에서 말씀 사역자로”

  1.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성령님께 이끔을 받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의지와 생각대로 움직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세세하게 이끄실때, 순종하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거룩하신 성령이 내 삶과 가정, 그리고 교회에 임하시기를 기도하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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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은 우리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쓰십니다. 어제까지는 남을 구제하는 일을 하게 하시다 오늘부터는 말씀을 해석하고 일깨우는 일을
    하게 하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지혜를 깨닫는 일도 꼭 정해진 어떤 한 모양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바람처럼 성령은 움직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성령처럼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방식은 질서와 순서가 잘 지켜지는
    것입니다. 혹여 어긋나면 설명이 뒤따르기를 바랍니다. ‘납득할만한’ 설명이 있으면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상황은 우리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인생의 룰은 이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콩 심은데 콩이 나니까 마음 놓고 잠을 잘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컨트롤 하지 말라고 하시지는 않습니다. 아무 것도 만지지 말고, 바라지도 말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자유의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컨트롤을 허락하셨기에 주신 선물입니다. 문제는 우리 손의 힘 grip 이 문제입니다. 바람처럼
    가벼울 정도는 아니어도 좀 느슨하고 여유 있게,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만 쥐어도 되는데 죽을 둥 살 둥 꽉 붙잡고 갑니다. 레이철 헬드
    에반스는 이런 말을 합니다. “I was a fundamentalist not because of the beliefs I held
    but because of how I held them: with a death grip” 어려서부터 경건한 신앙 생활을 하며 교회
    안에서 성장한 그가 성서를 공부하며 여러 질문과 씨름하는 중에 자신의 신앙이 과거보다 ‘약해진’ 것을 괴로와 합니다. 좋은 크리스찬은
    마음이 바뀌지 않는 것 “Good Christians, I used to think, don’t change their minds”
    세상의 학문이나 세태, 문화를 따라 마음도 바뀌는 것은 좋은 크리스찬이 아니라고 믿었기에 더욱 고민합니다. 신앙의 정체성과 씨름합니다.
    그는 근본주의적 신앙이란 특정한 교리나 방식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진리를 붙잡는데 너무 힘을 많이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자기 손에 들어간 힘을 믿는 것이 되고 마는 겁니다. 주말에 그의 책을 읽다가 이 문장에서 진주를 건져 올렸습니다. 내가
    고집불통이라고 하나님마저 고집불통인 분으로 만들어 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게 하소서. 내가 원칙주의자라고 하나님도 원칙 우선인 분이라고
    주장하지 않게 하소서. 내가 진보라고, 내가 여자라고, 내가 기혼이라고, 내가 기독교인이라고…하나님도 늘, 누구에게나 그러셔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게 하소서. 스데반을 쓰신 하나님. 예수님을 주신 하나님. 바람도 되시고 바위도 되시는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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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행위라면 어떤고난과 어려움이 올찌라도개의치 않고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될 수 있도록 능력과 담대함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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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성령 충만 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모든 생각과 언어와 행동과 삶이 거룩한 영이 통치 하시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뜻을 깨닫고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전체의 삶을 주님께 맡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가족들과 함께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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