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 32-42절: 성령으로 산다는 것

해설:

여기서 누가는 잠시 사울의 이야기를 멈추고 베드로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스데반의 박해 이후에도 사도들은 예루살렘과 유다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도자들로서 그들은 박해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버리지 않은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베드로를 통해 여러 가지 이적을 행하십니다. 룻다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48킬로 정도 떨어져 있던 동네입니다. 그곳에도 믿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베드로는 8년 된 중풍병자 애니아를 치유해 줍니다(32-34절). 그가 애니아를 치유하는 모습에서 예수님이 살아 움직이는 듯합니다(눅 5:24-25). 베드로의 사역으로 인해 룻다와 샤론에 살던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믿게 됩니다(35절).

룻다로부터 북서쪽으로 16킬러 정도 떨어진 곳에 욥바라는 항구 도시가 있었습니다. 그 도시에 히브리 이름으로는 다비다, 그리스 이름으로는 도르가라는 이름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선한 일과 구제사업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36절). 그 즈음에 그 여인이 병으로 죽습니다(37절). 그곳에도 믿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도르가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깁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룻다에 있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을 보내어 와 달라고 간청합니다(38절).

베드로가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모여 곡을 하고 있었습니다(39절). 베드로는 모두를 내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다음, 다비다를 깨워 일으킵니다(40절). 이 행동에서도 예수님이 보입니다. 그분도 회당장의 딸을 살리실 때 그렇게 하셨습니다(막 5:40-43). 베드로가 그 여자를 일으켜 세우고 신도들과 조객들을 불러 그 여인이 살아났다는 사실을 알립니다(41절). 

그 소식이 욥바에 전해졌고,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습니다(42절). 그 이후로 베드로는 여러 날 동안 시몬이라는 무두장이(짐승의 가죽을 다루는 사람)와 같이 지냅니다(43절).

묵상:

복음서의 내용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베드로가 애니아를 치유하고 도르가를 살려내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예수님의 그것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입니다. 저자 누가는 의식적으로 그렇게 묘사한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하시던 성령께서 베드로를 통해 일하고 계셨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독자인 우리도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베드로를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일하셨던 성령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람을 주목하면 넘어집니다. 성령의 일을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는 순간 사악한 사이비의 길로 들어섭니다.

도르가는 부자였을 뿐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도 열심을 냈습니다. 그래서 신도들이 그를 위해 베드로를 불러 온 것입니다. 도르가는 자신을 살려낸 베드로에게 전 재산이라도 내놓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의 집에 모셔서 융숭하게 대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도르가의 집을 떠나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서 머뭅니다. 무두장이는 짐승의 가죽을 다루는 직업입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짐승 가죽 다루는 사람들을 천대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도르가의 환대를 사양하고 무두장이의 집으로 가서 함께 지냈습니다. 이것도 역시 성령께서 이끄시는 길을 따른 결과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편안 곳, 높은 곳, 넉넉한 곳, 빛나는 곳을 향하게 하지만, 성령께서는 불편한 곳, 낮은 곳, 없는 곳, 어두운 곳으로 향하게 하십니다. 

4 responses to “사도행전 9장 32-42절: 성령으로 산다는 것”

  1. 주님! 저희 교회에도 욥바의 드로가 같은 여인이 있습니다, 어려운 병 가운데에서도 주님께
    찬양을 드리고 모든 교인과 이웃에게 role model 으로 감사하며 살아 갑니다. 중보 기도
    팀에서 모두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의 치유의 손길로 안수해주십시오. 치유를 통해 주님의
    영광을 모든교인들이 보고 교회가 크게 부흥 하고 사랑과 치유의 하나님을 세상에 알리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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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부족하고 연약하여 아직도 내마음속에 남아있는 교만과 아집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내마음에 오셔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치하여주시므로 남은 여생을 성령님과 동행하여 나는 죽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게하옵소서. 특별히 사귐에교회 공동체에 육신의 질별으로 고통받는자가 있으니 성령님께서 찾아가 고쳐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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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나의 본성대로 사는 삶이 아닌,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길을 따르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부르신 그 곳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며 순종할 수 있는 삶을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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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픈 사람이 낫는 일은 신비한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약을 복용하거나 수술을 받아 병을 치료하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모르는 병, 고치기
    어려운 병은 여전히 많습니다. 병에 걸려 아프면 병만 생각하게 됩니다. 병이 삶을 잠식해 버립니다. 베드로가 고친 중풍병 환자는 8년을
    누워 있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 애니아 뿐 아니라 식구들도 8년 동안 힘들게 살았을 것입니다. 베드로를 통해 성령의 능력이 그를
    일어나게 합니다. 병상에서 일어난 그를 보고 많은 이들이 주님께로 돌아왔다 (35절)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행 끝 행복 시작입니다.
    병이 빼앗아 버린 기쁨이 돌아오자 사람들도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욥바라는 곳에서 베드로가 고친 사람은 아픈 사람이 아니라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신 것처럼 베드로도 숨이 끊어진 도르가/다비다를 일으킵니다. 고침이 아니라 기적입니다. 이 기적도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오게 만들었습니다. 현대에는 심폐소생술을 통해 심장이 정지된 사람을 살려 냅니다. 하반신 마비로 못 걷던 사람도
    수술과 재활을 통해 다시 걸을 수 있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비한 일, 사람이 할 수 없던 일이 이제는 설명할 수 있는 일, 반복할
    수 있는 일이 되었습니다. 성령이 필요 없어진 걸까요. 신비나 기적, 우연 같은 단어는 잘 모를 때 쓰는 말일 뿐 연구하고 실험하면
    무엇이든 다 설명할 수 있게될까요. 믿음도 유통기한이 있나요. 용도폐기 될 수도 있으려나요. 모든 것이 너무나 발달한 세상에 사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아프고 약하고 두렵습니다. 병명을 알고 8년을 누워 있기도 하지만 어디가 어떻게 아픈건지도 모르는 채 8년의 두 배 세
    배를 살기도 합니다. 심장이 뛰기는 하는데 생명력 없이 뛰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새호흡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새바람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은 없어질 수가 없습니다. 없어져야 하고 폐기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주님이라고 착각했던 허상들입니다. 기적을 보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도 참 귀한 일입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 여전히 아프고 실망이 되어도 주님께로 돌아올 수 있게 성령님
    도와 주세요. 새로운 근무지로 출근한 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하며 살기 (committed to
    the life of service)로 결단했으니 성령님 그를 붙잡아 주시고 인도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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