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여기서 누가는 잠시 사울의 이야기를 멈추고 베드로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스데반의 박해 이후에도 사도들은 예루살렘과 유다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도자들로서 그들은 박해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버리지 않은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베드로를 통해 여러 가지 이적을 행하십니다. 룻다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48킬로 정도 떨어져 있던 동네입니다. 그곳에도 믿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베드로는 8년 된 중풍병자 애니아를 치유해 줍니다(32-34절). 그가 애니아를 치유하는 모습에서 예수님이 살아 움직이는 듯합니다(눅 5:24-25). 베드로의 사역으로 인해 룻다와 샤론에 살던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믿게 됩니다(35절).
룻다로부터 북서쪽으로 16킬러 정도 떨어진 곳에 욥바라는 항구 도시가 있었습니다. 그 도시에 히브리 이름으로는 다비다, 그리스 이름으로는 도르가라는 이름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선한 일과 구제사업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36절). 그 즈음에 그 여인이 병으로 죽습니다(37절). 그곳에도 믿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도르가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깁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룻다에 있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을 보내어 와 달라고 간청합니다(38절).
베드로가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모여 곡을 하고 있었습니다(39절). 베드로는 모두를 내보내고 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다음, 다비다를 깨워 일으킵니다(40절). 이 행동에서도 예수님이 보입니다. 그분도 회당장의 딸을 살리실 때 그렇게 하셨습니다(막 5:40-43). 베드로가 그 여자를 일으켜 세우고 신도들과 조객들을 불러 그 여인이 살아났다는 사실을 알립니다(41절).
그 소식이 욥바에 전해졌고,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습니다(42절). 그 이후로 베드로는 여러 날 동안 시몬이라는 무두장이(짐승의 가죽을 다루는 사람)와 같이 지냅니다(43절).
묵상:
복음서의 내용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베드로가 애니아를 치유하고 도르가를 살려내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생각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예수님의 그것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입니다. 저자 누가는 의식적으로 그렇게 묘사한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하시던 성령께서 베드로를 통해 일하고 계셨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독자인 우리도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베드로를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일하셨던 성령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람을 주목하면 넘어집니다. 성령의 일을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는 순간 사악한 사이비의 길로 들어섭니다.
도르가는 부자였을 뿐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도 열심을 냈습니다. 그래서 신도들이 그를 위해 베드로를 불러 온 것입니다. 도르가는 자신을 살려낸 베드로에게 전 재산이라도 내놓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의 집에 모셔서 융숭하게 대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도르가의 집을 떠나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서 머뭅니다. 무두장이는 짐승의 가죽을 다루는 직업입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짐승 가죽 다루는 사람들을 천대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도르가의 환대를 사양하고 무두장이의 집으로 가서 함께 지냈습니다. 이것도 역시 성령께서 이끄시는 길을 따른 결과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편안 곳, 높은 곳, 넉넉한 곳, 빛나는 곳을 향하게 하지만, 성령께서는 불편한 곳, 낮은 곳, 없는 곳, 어두운 곳으로 향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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