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0장 1-33절: 땅끝으로 향하는 첫 걸음

해설:

누가는 계속하여 베드로의 행적에 초점을 맞춥니다. 베드로의 초기 행적 중에 가장 의미 심장한 사건은 고넬료와의 관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누가는 가이사랴의 고넬료와 욥바의 베드로에게 일어난 일을 묘사하면서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신비로운 손길을 보게 합니다. 

고넬료는 로마 백부장(우리 식으로 하면 중대장 격)으로서 유다 총독의 수하에 장교였습니다. 그는 총독 관저가 있던 해변 도시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1절). 그가 “경건한 사람”(2절)이었다는 말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경건하고 이웃에게 자비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교의 관례대로 하루 세 번의 기도 시간을 지켰습니다. 어느 날 오후 기도 시간에 그는 천사의 방문을 받습니다(3절). 천사는 그의 기도와 자선 행위를 칭찬하면서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불러 오라고 지시합니다(3-8절). 욥바는 가이사랴로부터 48킬로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고넬료는 부하 병사들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를 모셔 오게 합니다. 

그들은 밤새 길을 걸어 다음 날 오정 쯤에 베드로가 머무는 시몬의 집에 도착합니다. 그 때 베드로는 지붕(유대 가옥의 지붕은 평평하게 되어 있었다)에 올라가 기도 하고 있었는데, 기도 중에 환상을 봅니다(9-10절). 하늘로부터 온갖 짐승이 담겨 있는 큰 보자기가 내려오더니(11-12절), “베드로야, 일어나서 잡아먹어라”(13절)는 음성이 들립니다. 그 보자기 안에는 율법이 부정 하다고 규정한 동물들도 있었기에 베드로는 그럴 수 없다고 거부합니다(14절). 그러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15절)는 음성이 들립니다. 그 환상은 세 번이나 반복되고 끝납니다(16절).

환상이 그친 후에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베드로에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당도합니다(17절).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접촉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베드로도 그들을 집에 들이기를 주저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그들을 만나 보라고 베드로를 밀어 내십니다(18-21절). 그들은 고넬료가 겪은 이야기를 베드로에게 해 주었고, 베드로는 안심하고 그들을 집 안으로 들입니다(22-23절). 하나님께서 받아주신 이방인들이므로 자신도 마땅히 받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튿날 베드로는 그들과 함께 가이사랴로 향합니다(23절). 그들은 그 다음 날이 되어서야 고넬료의 집에 도착합니다. 고넬료는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놓고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24절). 베드로가 들어오자 그들은 일제히 그 앞에 엎드려 절을 합니다(25절). 그러자 베드로는 “일어나십시오. 나도 역시 사람입니다”(26절)라고 만류합니다. 베드로는 집에 모여 있는 이방인들에게 유대인들의 관습을 설명하면서 자신이 그곳에 온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27-29절).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 자체로 부정 탄다고 믿었습니다. 고넬료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자세히 설명하고는(30-32절)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달라고 청합니다(33절).

묵상:

“한 사람의 신관이 그 사람의 인생관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전통적인 유대적 신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이해한 하나님은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었습니다. “내가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하여라”는 말씀을 따라 유대인들은 거룩하지 않은 것들을 철저히 가려서 구별하고 차별하고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이나 장애인 혹은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을 차별하고 무시하고 박해했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 받은 사람들 그리고 율법을 따라 거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만을 돌보시고 축복 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믿었기에 그들은 독선적이고 배타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신봉했던 배타적 신관을 부정하셨습니다. 그분이 “아바”라고 불렀던 참된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낳으신 분이며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은 선민을 통해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뜻이었는데, 유대인들은 그것을 특권으로 여겼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견디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신관을 부정했다는 데 있습니다. 베드로는 3년 동안이나 예수님께로부터 참된 하나님에 대해 보고 배웠지만 아직도 옛 신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도들조차 그 신관을 벗어나지 못하면 구원의 복음은 유다 땅 안에 갇혀 버릴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베드로가 하나님에 대해 눈을 활짝 뜨는 계기를 마련해 주셨고, 그로 인해 복음은 유대인의 경계선을 뛰어 넘게 되었습니다. 1장 8절에서 예언된 바와 같이 성령의 역사로 인해 복음은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를 넘머 “땅끝”(이방땅)으로 퍼져가기 시작합니다. 지금 복음이 우리에게까지 임한 결정적인 전환점이 바로 사도행전 10장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비로운 역사에 감탄하는 이 아침입니다. 또한 내가 과연 참된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만든 우상을 믿고 있는지 돌아보는 이 아침입니다. 

5 responses to “사도행전 10장 1-33절: 땅끝으로 향하는 첫 걸음”

  1. 모든 인종 뿐만 아니라 온우주를 창조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방 민족도 주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올려 드립니다. 경건하고 이웃에게
    예수님의 마음으로 섬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가족들과 함께 역사하시는 구원의
    신비를 보고 체험하고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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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나의 경험과 지식으로 만들어진 프래임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내 마음대로만 해석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고넬료와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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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은 온 인류에게 복음을 전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시간에 따라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아직도 변화되지 않은 베드로의 유대교적 사상을 환상을 통해 변화시키시고 많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갈망하고 기다리는 고넬료 집에 오도록하여 복음을 전하게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류를 구원하시는 끝없는 사랑을 다시한번 말씀을 통해 깨닫게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말씀에 내 마음을 비춰 봅니다. 내 안에 아직도 도사리고 있는 자아, 교만, 불평, 불만, 욕심등 복음의 전도자로써 버려야할 것들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의 마음을 담아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성령님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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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우리는 고넬료와 베드로가 만나는 장면을 전지적 시점에서 봅니다. 양쪽에서 일어난 일을 순서대로 보며 따라갑니다. 베드로의 활동이 이방인들에게 까지 확장되는 시작점이 고넬료와의 만남입니다. 고넬료는 이방 선교의 테스트 케이스입니다. 고넬료가 이방 선교의 첫번째 관문이 된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증언을 동료 유대인들에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부터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주님이시라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이방인들 앞에 나서서 예수를 전하는 일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고넬료는 그 갭을 메꿔주기에 좋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지만 유대교인으로서 베드로 앞에 나갑니다. 미국에서 1.5세 혹은 ‘in between’ 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the best of both worlds” 라고 부를 때가 있습니다. 유익한 agent 로 살아가는 길을 고넬료에게서 봅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와의 만남은 베드로가 가진 하나님 나라의 인식을 확 트여주는 일이 되기도 했습니다. 베드로가 본 환상은 하나님이 해제시켜 주신 블랙리스트 짐승들입니다. 먹어도 된다고 허락하신 새 리스트입니다. 우리는 이 환상을 평면적으로 읽고 지나가지만 베드로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극혐”하는 것들, 게다가 음식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세 번씩 마주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마음 준비를 하고 고넬료를 맞이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고넬료를 맞이함으로써 자기의 세계를 넓혔습니다.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 (15절)”을 아직도 부정한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는지 자신에게 묻습니다. 고넬료를 이방 사람, 로마 군인 상자에서 꺼내어 베드로와 교회의 에이전트로 쓰신 하나님의 손길을 보면서 나와 남을 한 곳에 고정 시켜 놓고 마냥 내버려 두는 일을 계속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식을 열어 주시고 은혜를 골고루 베푸시는 주님을 봅니다. 내가 나를 가두지 않도록 도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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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원칙은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넬료가 비록 지배자 로마군인이었을지언정 임무에 충성스런 참군인이기때문에 절대자이며 왕이신 주님을 그 마음에 이해하고 빋았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과연 나의 일에 내생활습관에 정직하고 최선을 다했는가. 내가 그랬다면 더 훌륭한 크리스쳔이었을텐데. 그렇지 않았음을 뉘우치며 회개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원칙대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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