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난 일이 “사도들과 유대에 있는 신도들”(1절)에게 전해집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위한 구원의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전해졌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낍니다. 그들은 이방인이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으려면 먼저 할례를 받고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이 되어야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고넬료의 집에서 복음을 전하고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베푼 사건을 커다란 스캔들로 간주하고 베드로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 “할례를 받은 사람들”(2절) 즉 유대적인 전통에 매어 있던 사람들이 시비를 겁니다(3절). 베드로는 차분히 자초지종을 전합니다(4-17절).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마지막 절 즉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 주셨는데, 내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17절)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며, 그렇기에 모든 전통과 관습과 교리를 내려 놓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을 ‘제2의 오순절 사건’으로 보았습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베드로의 보고를 듣고 모두 감동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묵상:
앞에서 언급한 대로, 전통과 인습과 편견을 벗어나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피부를 벗겨내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또한 주변에서의 반발과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은 자주 피를 불러 옵니다. 인간의 죄 된 본성은 전통과 인습과 편견 안에 그대로 머물러 사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베드로를 통해 일으킨 변혁의 바람은 배타적 선민의식에 물들어 있던 유대인 사도들과 신도들로부터 만만치 않은 저항을 불러 옵니다.
베드로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을 대면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메시아이니 이방인이 세례를 받으려면 먼저 개종 세례와 할례를 통해 유대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은 베드로 자신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왜 이방인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세례를 베풀었는지를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합니다. 자신을 통해 성령께서 하신 일들을 그들이 볼 수 있도록 기다렸습니다. 그 결과, 그들도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로써 교회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갈 수 있는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합니다.
성령을 따라 산다는 말은 눈 질끈 감고 자기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사람은 더 섬세하게 이웃을 배려하고 인내와 친절로 대합니다. 그렇게 하여 공동체를 세웁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의 인격을 통해 맺는 열매입니다(갈 5:22-23). 베드로는 성령의 은사만이 아니라 열매가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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