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예루살렘 교회는 야고보의 제안을 좋게 여기고 편지를 써서 대표를 뽑아 안디옥 교회로 보내기로 결정합니다(22절). 그 편지에서 예루살렘 교회는 혼란을 일으킨 사람들의 소행에 대해 사과하고(23-24절) 사절단을 보내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25절, 27절). 그들은 또한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사실을 밝힙니다(26절). 그들은,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이교 전통과 연관된 네 가지(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을 먹는 것, 여러 가지 형태의 성적인 죄를 멀리 할 것, 피를 먹지 말 것, 목매어 죽인 짐승을 먹지 말 것)를 삼가하라고 부탁합니다(29절).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견한 유다와 실라는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에 이르러 회중을 모아 놓고 편지를 읽어 줍니다(30절). 안디옥 교회의 회중은 그 제안을 기쁘게 받아 들였고(31절), 유다와 실라는 그곳에 머물며 신도들을 가르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32-33절). 얼마 후에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고, 바울과 바나바는 계속하여 안디옥의 교인들을 돌봅니다(35절).
(34절 없음)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이유는 성경의 장과 절을 표기할 때 원문에 포함되어 있던 구절(“그러나 실라는 그들과 함께 머무르려고 하였다”)이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 66권의 원본은 모두 소실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학자들이 필사본들을 대조 연구하여 원본에 가깝게 복구해 놓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신뢰성에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 성경 본문의 99%는 원본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묵상: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이유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때 토착민들과 구별된 삶을 살게 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너희의 하나님인 나 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레 19:2)라고 하셨습니다. ‘거룩’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카도쉬’는 ‘구별됨’ 혹은 ‘다름’을 의미합니다. 신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서 차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신을 믿는 사람 중에도 어떤 신을 믿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이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진리와 정의와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차별성을 드러내도록 주어진 지침이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잠정적이고 한시적인 지침이었습니다. 하지만 율법에 담긴 “구별되게 살라”는 하나님의 뜻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을 글자 그대로 지켜야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어느 시대, 어떤 상황에 살더라도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과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교회 교인들에게 요청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복음을 믿는 사람들 답게 과거에 물들었던 이교적 습관을 청산하고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답게 차별성 있는 삶을 살도록 힘쓰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주목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실에서 차별성이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말로 복음을 전해도 무용합니다.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다면, 그 믿음은 우리의 말과 행실을 통해 증명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매일 아침을 말씀과 기도로 여는 이유입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