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유다와 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안디옥 교회가 다시 안정을 찾은 후의 일입니다. 누가는 “며칠 뒤에”(36절)라고 썼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1차 전도 여행 때에 방문했던 도시들을 다시 찾아가 신도들을 돌아 보자고 제안합니다. 그 제안을 좋게 여긴 바나바는 마가(그의 히브리 이름은 요한이었다)를 데리고 가겠다고 말합니다(37절).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였는데, 1차 전도 여행 때에 버가에서 중도 하차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13:13).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답게 마가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바나바의 의견에 반대 합니다(38절). 한번 실패한 사람은 그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혹은 마가의 중도 하차로 인해 받은 마음의 상처 혹은 분노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던지도 모릅니다. 두 사람은 한치도 양보하지 않고 팽팽하게 맞섰고 결국 갈라서게 됩니다. “심하게 다투었다”(39절)는 표현에 사용된 헬라어가 ‘파록쉬모스’인데, 이것은 매우 강한 감정적 상태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는 말입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가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바나바가 먼저 마가를 데리고 키프로스로 떠납니다. 얼마 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실라를 불러서 육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갑니다(40-41절). 이 지점부터 누가는 바울의 여정을 따라갑니다. 그로 인해 바나바를 통해 이루어진 성령의 역사는 잊혀져 버립니다.
묵상:
성경은 정직하고 솔직한 역사의 기록입니다. 미화하거나 날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토록 성령 충만했던 초대 교회에 이런 다툼과 논쟁과 싸움이 있었다는 것도 놀랍고, 바울과 바나바 사도 사이에 다툼과 분열이 있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누가는 이 사실들을 담담하게 묘사해 놓았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경고이면서 또한 위로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고 성령 충만한 공동체가 된다 해도 인간적인 한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으며, 따라서 언제든지 갈등과 논쟁과 다툼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의 넘어짐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당할 수 있는 위기가 아니라 위기를 만나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는 갈등과 분열의 위기를 슬기롭게 해결했습니다. 그 과정에는 베드로와 바울과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은 사심에 기울지 않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르려 했습니다. 그 진심이 위기를 극복하게 했습니다. 오늘날 믿음의 공동체에 필요한 지도자는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반면, 바울과 바나바는 갈등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갈라졌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유익하게 변모되었습니다. 한 팀이었던 선교팀이 두 팀으로 커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마가 요한은 바울 사도가 제일 아끼는 제자로 변모합니다(골 4:10; 딤후 4:11; 몬 1:24). 한 때 다투고 갈라졌지만 나중에는 용서하고 화해했다는 증거입니다.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사람들은 때로 넘어지고 잘못할 수 있지만 성령께서 결국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여기서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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