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5장 36-41절: 바울과 바나바의 결별

해설:

유다와 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안디옥 교회가 다시 안정을 찾은 후의 일입니다. 누가는 “며칠 뒤에”(36절)라고 썼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1차 전도 여행 때에 방문했던 도시들을 다시 찾아가 신도들을 돌아 보자고 제안합니다. 그 제안을 좋게 여긴 바나바는 마가(그의 히브리 이름은 요한이었다)를 데리고 가겠다고 말합니다(37절).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였는데, 1차 전도 여행 때에 버가에서 중도 하차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13:13).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답게 마가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바나바의 의견에 반대 합니다(38절). 한번 실패한 사람은 그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혹은 마가의 중도 하차로 인해 받은 마음의 상처 혹은 분노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던지도 모릅니다. 두 사람은 한치도 양보하지 않고 팽팽하게 맞섰고 결국 갈라서게 됩니다. “심하게 다투었다”(39절)는 표현에 사용된 헬라어가 ‘파록쉬모스’인데, 이것은 매우 강한 감정적 상태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는 말입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가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바나바가 먼저 마가를 데리고 키프로스로 떠납니다. 얼마 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실라를 불러서 육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갑니다(40-41절). 이 지점부터 누가는 바울의 여정을 따라갑니다. 그로 인해 바나바를 통해 이루어진 성령의 역사는 잊혀져 버립니다.

묵상: 

성경은 정직하고 솔직한 역사의 기록입니다. 미화하거나 날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토록 성령 충만했던 초대 교회에 이런 다툼과 논쟁과 싸움이 있었다는 것도 놀랍고, 바울과 바나바 사도 사이에 다툼과 분열이 있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누가는 이 사실들을 담담하게 묘사해 놓았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경고이면서 또한 위로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고 성령 충만한 공동체가 된다 해도 인간적인 한계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으며, 따라서 언제든지 갈등과 논쟁과 다툼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의 넘어짐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당할 수 있는 위기가 아니라 위기를 만나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는 갈등과 분열의 위기를 슬기롭게 해결했습니다. 그 과정에는 베드로와 바울과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은 사심에 기울지 않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르려 했습니다. 그 진심이 위기를 극복하게 했습니다. 오늘날 믿음의 공동체에 필요한 지도자는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반면, 바울과 바나바는 갈등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갈라졌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유익하게 변모되었습니다. 한 팀이었던 선교팀이 두 팀으로 커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마가 요한은 바울 사도가 제일 아끼는 제자로 변모합니다(골 4:10; 딤후 4:11; 몬 1:24). 한 때 다투고 갈라졌지만 나중에는 용서하고 화해했다는 증거입니다.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사람들은 때로 넘어지고 잘못할 수 있지만 성령께서 결국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여기서 발견합니다. 

4 responses to “사도행전 15장 36-41절: 바울과 바나바의 결별”

  1. 성경은 진리이고 사실임을 깨닫게하는 오늘의 말씀입니다. 선하고 악한사실, 참되고
    그릇된 사건, 자랑스럽고 부끄러운 사실을 그대로 묘사한 책입니다. 그러니 믿을만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도들의 갈라지는 부끄러운 사건을 가지고도 영혼구원의 뜻을 이루시는
    지혜와 은혜의 주님 이십니다. 믿음의 가족들과 함께 능력의 하나님 구원계획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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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성령님을 구하는 하루 입니다. 분열과 갈등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하나님의 뜻을 고심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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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인간사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한 성서가 있을까요? 성령님은 우리의 브끄러운 삶까지도 그냥 넘기시지 아니하시고 성령이 충만한 바울과 바나바를 흩어지게해서 복음 전파를 확대하심을 믿습니다. 우리모두가 성령 충만함을 구하고 받아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인도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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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바울과 바나바가 헤어집니다. 바나바의 조카 마가를 여행에 다시 참여 시키느냐 마느냐를 놓고 다투다가 갈라서기로 합니다. 함께 하던 일을
    이제 각자 하자고 정했습니다. 바나바가 바울에게 어떤 사람인데… 헤어지자는 말은 누가 먼저 꺼냈든 막다른 심정에서 나온 말이었을
    겁니다. 마가의 행동이 별 것 아닌 가벼운 실수 정도가 아니었다고 짐작합니다. 바울의 성격도 무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마가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성경은 알려주지 않지만 바울은 마가가 또 그런 잘못을 할까봐 다시는 같이 다니지 않겠다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또 그러면 어떡하라구, 시간과 에너지를 그렇게 낭비할 수는 없어’ 라고 바울이 말하면 ‘다시 안 한대잖아, 철이 없어 그랬지.
    바뀔거야. 기회를 주자고’ 라고 바나바가 답합니다. 상상해 봅니다. ‘사람은 안 바뀐다’와 ‘바뀌기도 한다’ 논쟁은 자주 일어납니다.
    ‘기다려주자’와 ‘시간 낭비다’ 라는 주장도 팽팽합니다. 우리는 바나바와 바울의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지 알게 됩니다. 자초지종은
    모르지만 바나바의 관용이 옳았던 것으로 추측합니다. 마가가 변한 만큼 바울도 부드러워진 것 같습니다. 가게를 처음 할 때 옛 주인한테서
    물려받은 종업원이 여러 명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게이였는데 말이 좀 많았습니다. 산만하기도 하고 덜렁거리는 편이었습니다. 10년
    전 만 해도 LGBTQI 사회 인식이 지금 같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게이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본인은 자기가 말
    안해도 알거라고 생각했고 우리 역시 다른 종업원들한테서, 그리고 그의 ‘차림새’로 알았습니다. 피차 “don’t ask, don’t
    tell” 입장을 취한 셈이지요. 종업원들이 하나 둘 그만 두고 새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이 친구도 실수가 많아 정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좋은 얼굴로 헤어졌지만 가끔 생각이 납니다. 혹시 내가 그를 ‘다르게’ 본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의 실수에 더
    예민했던게 아니었을까요.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나와 다릅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마가를 놓고 바나바와 다투는 바울을 상상합니다. 바울의 매서운 지적에 마음이
    쓰린 바나바를 상상합니다. 몸 둘 바를 모르는 마가도 상상해 봅니다. 너그러운 주님을 떠올리며 나 또한 덜 인색하기로, 덜 예민하고 덜
    까다롭기로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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