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베뢰아에 둔 채 홀로 아테네로 이동합니다. 그는 두 동역자를 기다리는 동안 아테네를 돌아 보는데, 가는 곳마다 우상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격분할 정도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16절). 그는 늘 하던 대로 회당을 찾아가 유대인들에게 전도하는 한 편, 광장에서 만나는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합니다(17절). 그는 에피쿠로스 철학자와 스토아 철학자와도 논쟁을 합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그에게 호기심을 가지기도 하고 의심하기도 합니다(18절). 새로운 종교와 사상에 대해 관심이 많던 그들은 바울을 ‘아레오바고’라 불리는 광장에 바울을 세우고 공개적으로 그의 사상을 피력할 기회를 줍니다(19-21절).
바울 사도는 우선 아테네 사람들의 종교심에 대해 칭찬합니다(22절). 그런 다음, 아테네 시에서 본 우상 중 ‘알지 못하는 신’이라고 이름 붙여진 우상을 언급합니다. 그는, 실제로 그들이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신이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바로 그 신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23절). 그 신은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며 모든 생명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분입니다(24-26절). 따라서 인간은 그분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27절). 바울은 스토아 학파의 시인 아라토스의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 모두는 창조주의 다스림 아래에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28절).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우상과 다릅니다(29절). 하나님은 사람들이 과거에 무지하여 행한 일들을 묵인하셨지만 이제는 그 무지의 행위로부터 회개하라고 하십니다(30절).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정의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기가 정하신 사람”(31절)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시키셔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장차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셨습니다.
바울이 부활에 대해 설명하자 듣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 동요가 일어납니다. 그리스-로마 사람들에게 죽은 자의 부활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32절). 바울은 더 오래 지체하지 않고 고린도로 향합니다(33절). 그가 아테네에서 사역한 기간은 길지 않았으나 그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34절).
묵상: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에서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고 구원하려는 것입니다”(9:22)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을 만나면 유대인에 맞게 처신했고, 이방인을 상대할 때에는 그들의 문화와 상황에 자신을 맞추었습니다. 유식한 사람을 대할 때에는 그들의 지적 수준에 맞추었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이 전한 설교(13:16-41)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언자들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심을 증언합니다. 반면, 아테네에서 전한 설교는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이 설교에서 바울 사도는 율법이나 예언에 대한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는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하여 복음을 전합니다. 로마 식민지 다소에서 그리스-로마 식의 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바울은 당대의 철학자들과 상대할 수 있는 사상적/철학적 실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테네에서의 바울의 전도는 실패에 가까웠습니다. 아테네 시민들의 심성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지적으로, 영적으로 지상 최고의 수준에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죽은 자가 부활했다는 소식은 그들에게 유치하고 어리석은 이야기로 들렸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넘어서기에 너무도 높은 벽 앞에 서 있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동안에는 유대인들로부터의 방행 공작으로 어려움을 당했는데, 아테네에서는 새로운 종류의 난관에 부딪힙니다. 그것이 아테네를 속히 떠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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