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8장 1-17절: 두려움과 낙심에 빠질 때

해설:

바울은 아테네에서의 사역을 서둘러 마무리 하고 고린도로 갑니다(1절). 당시 항구 도시 고린도는 상업적으로 번성했고 도덕적으로 부패한 것으로 유명 했습니다. 바울은 거기서 아굴라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귀중한 동역자가 됩니다. 그들은 원래 로마에 살았는데, 유대인들 사이에 일어난 분쟁으로 인해 글라우디오 황제가 로마로부터 유대인들을 추방했을 때 고린도로 이주했습니다(2절).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는 주후 49년에 이 사건이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아굴라 부부는 천막 만드는 일(혹은 가죽 세공업)을 했는데, 바울도 율법교사로 훈련 받으면서 같은 기술을 배웠기에 그의 집에서 함께 일하며 지냈습니다(3절).

고린도에서도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토론하며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합니다(4절). 그 즈음에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의 신도들로부터 모은 헌금을 가지고 바울에게 옵니다. 그로 인해 바울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5절). 

고린도에서도 유대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들을 떠나 이방인들에게로 갑니다(6절). 바울 일행은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을 믿는 디디오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을 거점으로 해서 전도 합니다(7절). 유대인들 중에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도 있는데, 회당장인 그리스보와 그의 가족이 그랬습니다. 또한 고린도 사람들 중에도 많은 이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습니다(8절). 

그러던 어느 날 바울은 환상 가운데,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라. 아무도 너를 해치지 못한다. 이 도시에 나의 백성이 많다”(9-10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누가가 상세히 적어 놓지는 않았지만, 바울은 그곳에서 적지 않은 고난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은 그는 그곳에서 1년 6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칩니다. 이로써 고린도는 그의 두 번째 선교 여행 중 가장 오래 머무른 도시가 되었습니다(11절).

그 때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으로 있었는데(주후 51-52년), 유대인들이 힘을 합쳐 바울을 재판정으로 끌고가 고소합니다(12-13절). 갈리오는 유대인들의 내부적인 사건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14-15절) 그들을 법정 바깥으로 쫓아내자((16절), 그들은 회당장 소스데네를 재판정으로 데리고 와서 때립니다. 소스데네도 그리스보처럼 바울의 복음을 받아 들였던 것입니다(고전 1:1). 하지만 총독은 관여하지 않습니다(17절). 

묵상:

바울 사도는 고린도에서 18개월 동안 지내면서 전도합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실라와 디모데가 모금한 헌금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든든한 지원 덕택이었을 것입니다. 누가는 그 기간에 일어난 일을 간략하게 묘사해 놓았지만 실제로는 수 많은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특별히 그는 고린도에서 여러 가지의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 그에게 나타나셔서 격려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전도의 결실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사실로 인해 낙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우기도 있고 건기도 있음을 경험합니다. 기대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열매를 거둘 때도 있지만, 한 영혼도 얻지 못하고 시간을 보낼 때도 있습니다. 

외부로부터의 박해와 부실한 전도의 결실로 인해 낙심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무서워하지 말아라”(9절)고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잠자코 있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여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격려하시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유는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하지 못할 것이다”(10절)라는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합니다(마 28:20). 박해를 당하거나 열매가 없을 때 우리는 너무도 쉽게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라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상황이 어떻든지 상관없이 그와 함께 하신다고 확인해 주십니다. 둘째 이유는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라는 말씀에 있습니다. 바울은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앞으로 복음을 받아들일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고 계십니다. 그 사람들이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바울은 계속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전하는 사람이 없으면 듣지 못하고, 듣지 못하면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롬 10:14).

복음을 전하다가 거부로, 배척으로 혹은 무응답으로 낙심될 때, 우리도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늘 함께 하십니다. 복음을 전할 때 배척 당하고 거부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하기를 포기하지 않을 때 결실을 얻게 하십니다. 

4 responses to “사도행전 18장 1-17절: 두려움과 낙심에 빠질 때”

  1. 주워진 상황이 어렵고 힘들 때에도 기쁘고 편안할 때에도 주님께서 하신 마지막 말씀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잊지않고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오랫동안 침묵하시는
    것도 주님의 귀한 뜻이 있는것으로 확신하고 소망을 갖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또 이웃에서 소외된자 들에게 임마누엘의 주님을
    알리고 기쁨과 영생과 천국의 소망을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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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께서 지금 이시간에도 불꽃 같은 눈으로 세상을 지켜보시고, 특히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알게하시니 감사합니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잠자코 있지말고, 끊임없이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하지 못할것이다.” (9-10). 이 말씀을 항상기억하고 믿고 행하는 내가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 주시고 동행하여 주시옵기를 산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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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오늘 말씀이 위로가 됩니다. 결과만 쫓는 삶이 아니라, 과정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묵상하며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내 사역이 아닌,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한 것을 되새기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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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바울도 우리처럼 실망하기도 하고, 주저하거나 의심하는 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선교 길에 나섰을 때는 복음으로 사람들을 변화 시키는 설레임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을 것입니다. 자기처럼 ‘특별한’ 체험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한 사람이 많지 않고, 자기처럼 유대 율법과 전통에 박식한 사람도 드물다는 사실이 훈장처럼 자랑스럽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물론 바울 사도는 뒤에 이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는 높은 경지에 다다릅니다. 초연해지고 단순해집니다. 산을 타는 사람들은 정상에 서면 세상이 참 아름답지만 또 별 것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고 합니다. 정상까지 올라 오면서 자기를 초월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단순해집니다. 정상에 오르는 것 한가지에 몰두합니다. 바울은 아테네에서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과 토론을 하면서 전도가 잘 되지 않아 많이 답답했을 것입니다. 종교와 신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인데도 이야기가 잘 먹히지 않을 때 참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 뒤에 간 고린도는 인구가 많아 복잡하면서 또 활기찬 항구 도시였습니다. 사람도 물품도 통행량이 상당했겠지요. 이곳에서 사는 동안은 나그네보다 거주자 같은 기분으로 살았을 것 같습니다. 숙박하는 곳이 일정하고, 천막도 같이 만들면서 안정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책임이지 나에겐 잘못이 없습니다 (6절)”라고 말합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요. 다행히 회당 옆에 사는 이방인 디디오 (디도)가 바울의 말을 듣고 온 집안이 신자가 되었습니다. 또 회당장이던 그리스보 (유대인이었겠지요)도 온 식구와 함께 세례를 받았고, 이를 본 다른 많은 사람들도 세례를 받았습니다. 설레임이 실망으로 피곤함으로 바뀔 즈음 변화가 생겨 활력을 되찾아 다시 계속하는 싸이클입니다. 그러던 중에 환상을 통해 주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초연해지고 단순해지는 훈련을 받습니다. 자기를 내려놓고 주님만 높입니다. 자기가 골랐던 과거의 옷을 벗고 주님이 쓰시는 사람의 옷으로 갈아 입습니다. 겉을 보면 바울의 ‘삶의 질’은 하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속에는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바울의 인생에서 세상의 그래프와 하나님의 그래프가 자리 바꿈을 합니다. 세상은 사라지고 하나님만 남습니다. 영생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음성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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