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바울은 아테네에서의 사역을 서둘러 마무리 하고 고린도로 갑니다(1절). 당시 항구 도시 고린도는 상업적으로 번성했고 도덕적으로 부패한 것으로 유명 했습니다. 바울은 거기서 아굴라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귀중한 동역자가 됩니다. 그들은 원래 로마에 살았는데, 유대인들 사이에 일어난 분쟁으로 인해 글라우디오 황제가 로마로부터 유대인들을 추방했을 때 고린도로 이주했습니다(2절).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는 주후 49년에 이 사건이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아굴라 부부는 천막 만드는 일(혹은 가죽 세공업)을 했는데, 바울도 율법교사로 훈련 받으면서 같은 기술을 배웠기에 그의 집에서 함께 일하며 지냈습니다(3절).
고린도에서도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토론하며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합니다(4절). 그 즈음에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의 신도들로부터 모은 헌금을 가지고 바울에게 옵니다. 그로 인해 바울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5절).
고린도에서도 유대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들을 떠나 이방인들에게로 갑니다(6절). 바울 일행은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을 믿는 디디오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을 거점으로 해서 전도 합니다(7절). 유대인들 중에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도 있는데, 회당장인 그리스보와 그의 가족이 그랬습니다. 또한 고린도 사람들 중에도 많은 이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습니다(8절).
그러던 어느 날 바울은 환상 가운데,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라. 아무도 너를 해치지 못한다. 이 도시에 나의 백성이 많다”(9-10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누가가 상세히 적어 놓지는 않았지만, 바울은 그곳에서 적지 않은 고난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은 그는 그곳에서 1년 6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칩니다. 이로써 고린도는 그의 두 번째 선교 여행 중 가장 오래 머무른 도시가 되었습니다(11절).
그 때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으로 있었는데(주후 51-52년), 유대인들이 힘을 합쳐 바울을 재판정으로 끌고가 고소합니다(12-13절). 갈리오는 유대인들의 내부적인 사건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14-15절) 그들을 법정 바깥으로 쫓아내자((16절), 그들은 회당장 소스데네를 재판정으로 데리고 와서 때립니다. 소스데네도 그리스보처럼 바울의 복음을 받아 들였던 것입니다(고전 1:1). 하지만 총독은 관여하지 않습니다(17절).
묵상:
바울 사도는 고린도에서 18개월 동안 지내면서 전도합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실라와 디모데가 모금한 헌금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든든한 지원 덕택이었을 것입니다. 누가는 그 기간에 일어난 일을 간략하게 묘사해 놓았지만 실제로는 수 많은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특별히 그는 고린도에서 여러 가지의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 그에게 나타나셔서 격려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전도의 결실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사실로 인해 낙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우기도 있고 건기도 있음을 경험합니다. 기대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열매를 거둘 때도 있지만, 한 영혼도 얻지 못하고 시간을 보낼 때도 있습니다.
외부로부터의 박해와 부실한 전도의 결실로 인해 낙심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무서워하지 말아라”(9절)고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잠자코 있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여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격려하시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유는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하지 못할 것이다”(10절)라는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합니다(마 28:20). 박해를 당하거나 열매가 없을 때 우리는 너무도 쉽게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라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상황이 어떻든지 상관없이 그와 함께 하신다고 확인해 주십니다. 둘째 이유는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라는 말씀에 있습니다. 바울은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앞으로 복음을 받아들일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고 계십니다. 그 사람들이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바울은 계속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전하는 사람이 없으면 듣지 못하고, 듣지 못하면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롬 10:14).
복음을 전하다가 거부로, 배척으로 혹은 무응답으로 낙심될 때, 우리도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늘 함께 하십니다. 복음을 전할 때 배척 당하고 거부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하기를 포기하지 않을 때 결실을 얻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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