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이 즈음에 바울 사도는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갈 계획을 세웁니다. 흉년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고 있던 예루살렘 신도들을 돕기 위해 헌금을 모으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헌금을 전달해 주고 나서 로마로 갈 계획을 세웁니다(21절). 그는 먼저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케도니아로 보내고 자신은 에베소에 잠시 더 머뭅니다(22절).
그 즈음에 에베소에 큰 소동이 일어납니다. 에베소는 아데미 여신을 위한 거대한 신전이 있었고, 그 신전에서 제사 드리기 위해 사방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그것은 에베소 사람들에게 중요한 재원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이 전한 복음은 아데미 신으로 인해 먹고 살던 사람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는 우상 숭배를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바울에 대한 그들의 원한이 점점 커지자 데메드리오가 에베소 사람들을 선동합니다(23-27절). 흥분한 사람들이 바울과 동행하고 있던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아 극장으로 끌고 갑니다(28-29절). 바울이 뒤늦게 알고 극장으로 가려 하자 제자들과 관리들이 말립니다(30-31절).
극장에 모인 군중은 서로 옥신각신 하며 자기들끼리 다툽니다(32절). 유대 사람들은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까 염려하여 알렉산더에게 자신들은 이 문제에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라고 합니다. 알렉산더가 마지 못해 군중 앞에 서지만, 에베소 사람들은 그가 유대인인 것을 알고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33-34절). 그 때 시청 서기관이 달려와 흥분한 군중을 진정시키고는 문제가 있으면 정식 절차를 따라 고소하라고 말하고는 모임을 해산시킵니다(35-40절).
묵상:
바울의 에베소 사역은 3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20:31). 그 기간 동안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누가는 그 중에서 몇 가지 사건만을 소개합니다. 그는 먼저 바울을 통해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에게서 “비상한 기적”(11절)이 많이 나타났고, 마술로 먹고 살던 사람들이 회개하여 값비싼 마술 교과서들을 불태워 버립니다. 그래서 누가는 “주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퍼져 나가고, 점점 힘을 떨쳤다”(20절)고 씁니다.
하지만 뒤이어 나오는 이야기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에베소를 떠날 즈음에 일어난 일이었을 것입니다. 데메드리오가 선동하여 아데미 여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바울과 신도들을 대항하여 들고 일어납니다.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그들에게 붙잡혀 극장으로 끌려가는데, 바울 사도는 몸을 숨겨야 했습니다. 바울 사도를 통해 비상한 기적을 행하게 한 성령의 능력이 이 과정에서는 증발된 것처럼 보입니다. 바울과 신도들은 에베소의 서기관의 중재로 인해 위기를 모면합니다. 이 소동이 끝난 후에 바울 사도는 에베소를 떠납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성령의 역사에도 우기가 있고 건기가 있습니다. 성령의 나타나심이 강력할 때도 있고, 약해질 때도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약해지는 데에는 인간적인 요인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주로 성령의 주권적 판단에 따라 일어납니다. 왜 어떤 때는 강력하게 드러나고 어떤 때는 약해지는지, 우리로서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성령께서 증발한 것 같은 때에도 그분은 여전히 일하고 계시고 그분의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고 건기를 견디는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날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시편 22편 1절의 기도입니다. 극심한 고난에 처하여 마치 하나님에게 버림 받은 것 같은 절망감을 토로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얼른 보면 불신과 회의의 기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기도는 하나님에게 버림 받은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다는 역설적인 의미의 기도입니다. 처절한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고 그분께 자신을 맡기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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