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장 1-16절: 우회로로 돌아갈 때

해설: 

에베소에서의 소동이 그친 후에 바울은 마케도니아로 가서 2차 전도 여행 때에 방문했던 도시들을 다니며 제자들을 격려합니다(1-2절). 모든 사역을 마친 후 그는 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시리아로 가려 했으나 유대인들이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행로를 바꾸어 오던 길을 돌아갑니다(3절). 그 때 바울 사도 곁에는 전도 사역을 통해 얻은 일곱 명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4절). 그들은 먼저 드로아에 가서 바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5절). 바울과 누가는 무교절이 끝난 뒤에 드로아에 이르러 일 주일을 지냅니다(6절).

그곳에서 머무는 동안 “주간의 첫 날”(즉 일요일)에 바울은 신도들을 모아 성찬을 나누고 밤 깊도록 말씀을 가르칩니다(7절). 삼층에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문에 걸터 앉아 신도들과 함께 설교를 듣고 있었는데, 졸다가 그만 아래 층으로 떨어져 죽습니다(8-9절). 바울은 그를 끌어 안고는 살아 있다면서 신도들을 위로합니다(10절). 유두고를 쉬게 뉘어 놓고 바울은 아침까지 말씀을 이어갑니다(11절). 낡이 밝자 그 청년은 기력을 회복했고, 신도들은 크게 위로 받습니다(12절). 

누가와 다른 일행은 그곳에서 배를 타고 앗소로 내려갔는데, 바울 사도는 유대인들의 위험을 고려하여 육로를 택합니다. 그는 앗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자들과 합류하여 미둘레네로 갑니다(13-14절). 그들은 기오 맞은 편을 지나 사모에 들렀다가 밀레도에 이릅니다(15절). 바울 사도는 오순절 이전에 예루살렘에 당도하기 위해 에베소에 들르지 않기로 합니다(16절). 그곳에 가면 어쩔 수 없이 한 동안 머물러야 했기 때문입니다.

묵상:

바울 사도가 가는 곳마다 그의 목숨을 노리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자주 우회로를 택해야 했습니다. 배를 타고 가면 단시간에 갈 수 있었으나 위험을 피하여 육로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는 육로로 돌아가는 길에 사역지들을 방문하여 신도들을 격려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지름길로 갔더라면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4절에 언급된 것처럼, 그러는 사이에 바울 곁에는 여러 도시에서 얻은 제자들이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 우회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지름길로 가는 것이 좋아 보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더 좋은 길이 보입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우리가 계획한 길이 막히고 우회로로 돌아가야 할 때 낙심하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기대감을 가지고 그 길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가 계획하지도, 예상하지도 않은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잠 16:9)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추구할 것은 가장 쉽고 빠르고 편한 길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찾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복된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따라 길을 정하지만, 그 길이 막혀 돌아가야 할 때 하나님의 surprise를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그 길을 걸어갑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무덤 속에 머물러 계신 날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야 말로 거대한 우회로입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 자체가 우회로입니다. 그 우회로를 걸어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 원합니다. 그것이 우회로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4 responses to “사도행전 20장 1-16절: 우회로로 돌아갈 때”

  1. 찔림은 저의 허물 때문이고 저의 죄 때문에 상 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유두고를 살리신 주님 마땅히 죽어야할 가련한 존재를 살리셨습니다.
    이 엄청난 은혜를 믿음의 동료들과 함께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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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사도바울이 선교여행을 할때마다 매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이 여러모로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살해위협과 고난으로 인해서 가기 꺼려할 수도 있고, 반면에 놀라운 기적과 은혜로 칭송받으며 살아가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다른 곳으로 가는 선택도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사람은 안주하고 안전한 삶을 원하기 때문이지요. 내 삶을 돌이켜봅니다. 안주하는 삶만 혹은 고난으로 인해서 힘들어 하는 삶, 이 모든것에서 어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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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라틴어로 고통은 pati, passio 이고, 여기서 passion이라는 단어가 나왔답니다. 사순절의 마지막 한 주간을 우리는 고난주간
    – Passion week, Holy week – 이라고 부릅니다. 보통 열정이나 열심, 욕망이라고 번역되는 패션은 그리스도의
    ‘고난’ the Passion of Christ 을 뜻합니다. 영화 제목으로도 친숙한 이 말을 대체하거나 병행해서 같이 쓰는 말은
    없습니다. suffering 으로 이해하지만 passion 입니다. 테러블한 일이 일어난 금요일을 굿 프라이데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지는
    않지만 어딘지 닮은꼴입니다. 바울의 여행이 우리 눈에는 멀리 돌아서 가는 불편한 우회로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준비하신 서프라이즈가
    기다리는 좋은 길이라는 해설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인생이 순탄대로, 꽃길, 지름길이기만 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가시밭길, 고생길, 빙빙 돌아 먼 길로 다니는 사람보다 더욱 값지고 행복한 인생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손녀들이 다니는
    교회학교의 초등부 교실 벽에서 God’s Way is Always Perfect 이라는 포스터를 보았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기에
    그분의 길과 방법은 늘 완전합니다. 논리로도 맞는 말이고, 경험으로도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나고 난 뒤에 깨닫습니다. 먼
    길을 돌아가는 동안에는 기쁘지 않습니다. 주님의 뜻으로 우회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고집과 어리석음 때문에 사나흘 걸릴 길을 40년이나
    걸리는 광야 길로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영 못 깨달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사순절의 끝이 빈무덤인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육신의 피곤함에 그만 잠들었다 떨어져 죽은 유두고가 깨어나고 살아나서 너무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살아난 젊은이를 집으로
    데려가면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12절).” 모든 죽음이 허물어지는 부활의 아침을 기다립니다. 죽음의 모든 형태를 무력하게 하시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You Are Always Per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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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당신의 길에 순응하게 하소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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