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3장 12-35절: 하나님의 선교

해설:

다음 날, 40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힘을 합쳐 바울을 죽이기로 공모합니다(12-13절). 그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천부장에게 요구하여 바울을 한번 더 산헤드린 청문회 장으로 불러내라고 요구합니다. 그들이 매복했다가 이동하는 중에 습격하여 바울을 처치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14-15절). 

다행히 바울의 조카가 이 음모를 알게 됩니다. 그는 병영으로 가서 바울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16절).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바울은 백부장 가운데 한 사람을 통해 천부장에게 알립니다(17-22절). 자신의 수하에 있는 로마 시민이 유대인들에게 살해 당하면 천부장은 총독에게 심한 문책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천부장은 적지 않은 군사들을 동원하여 바울을 벨릭스 총독에게로 보냅니다(23-24절). 벨릭스 총독은 주후 52-60년까지 로마의 유대 총독을 지낸 사람입니다. 

천부장은 벨릭스 총독에게 편지를 써서 바울이 로마 시민인 것과, 자신이 알아본 결과 바울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 그리고 유대인들이 음모를 꾸며서 바울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립니다(26-30절). 군인들은 바울을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안디바드리까지 호송하여 인계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안디바드리에 있던 병사들은 바울을 가이사랴까지 데리고 가서 벨릭스 총독 앞에 대령합니다(31-33절). 총독은 천부장의 편지를 읽고 재판이 열릴 때까지 바울을 헤롯 궁에 가두어 놓습니다(34-35절).

묵상: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복음전도자로 부르시고 그의 마음 속에 복음에 대한 불붙는 열정을 주셔서 그로 하여금 계속해서 복음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바울의 선교를 이끄십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바울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을 따라 가고 있음을 봅니다. 무대 앞에 보이는 것은 바울과 천부장과 대제사장과 무리들과 병사들이지만, 정작 그 모든 사람들 위에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세우시고 그 길로 바울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진행하시는 선교에 바울 사도가 참여하고 있는 셈입니다. 

선교학에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선교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시작하시고, 그분이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통해 그분이 이루시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선교는 태초부터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파를 위해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 전능자의 그늘 아래서 살고 활동합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나를 향한 주권과 선하신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나의 삶을 맡기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이 온 세상에 증거되도록 우리를 써주시기를 기도합니다. 

5 responses to “사도행전 23장 12-35절: 하나님의 선교”

  1. 복음증거에 위험과 고난이 따르는것을 알면서도 주님의 지상 명령에 순종하는
    결단을 원합니다. 특별히 영혼구원은 주님께서 주관 하시는것을 확신하고 기쁘게
    동참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가족들과 함께 모든 생각 언어 행동과 삶으로
    십자가의 은혜를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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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마치 배우가 각본에의해 움직이는 것 같이 바울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하나님의 기획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순간 순간에 지혜를 발휘해서 위험을 넘어서는 것 같지만 그 뒤에서 주님이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받아 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기획하시어 옳은 길을 알려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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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오늘도 나에게 주신 사명과 선교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며 사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를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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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계획과 뜻을 깨닫는 데 열심을 내어 살기를 원합니다. 깨달아 가는 도중에 만나는 모든 이들과 더불어 사는 법을
    익히며 살기를 원합니다.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인내하면서 기쁨과 감사의 열매를 맺어 이웃과 나누게도 하소서. 바울은 예수의 부활을
    전하는 데 전력질주를 했습니다. 오직 한 길 만을 보고 달렸습니다. 바울을 죽이겠다고 모인 음모자들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 (12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큰 일을 도모한다는 것이 현실성이 있는 일인지
    모르지만 그들의 결의가 얼마나 당찬 지를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이에 비해 바울은 별다른 준비도 없어 보입니다. 여행에 동행한 일행이
    있었어도 지금은 옥에 갇혔으니 혼자입니다. 주께서 지켜 주시고 알려 주신다는 믿음이 없다면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바울은 다마스커스 길에서 빛 가운데서 만난 주님을 마음에 품고 어떤 것에도 흔들리거나 꺾이지 않으면서 자기 길을 달립니다.
    그의 믿음에 비하면 나는 가까이 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한전 앞에서 촛불 키기’ 정도도 아닌, 한전 앞 반딧불도 못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도 하나님의 선교로 그분의 자녀가 되고 그분의 나라를 꿈꾸게 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다이애나 버틀러 배스 교수의 글을
    이메일로 받아 읽고 있습니다. 최근에 연합감리교의 한국어 뉴스레터인 ‘두루알리미’에서 시카고 템플 교회의 한혜원 목사님 글을 올렸는데
    그 글에서 언급한 교수입니다. 배스 교수는 부활절이 하루, one Sunday 가 아니라 50일 (7 Sundays) 동안 계속 되는
    절기임을 상기 시키면서 수난절의 금식 Fast 이 부활절 만찬 Feast 으로 바뀌는 것처럼 우리의 생각도 부활절기에 맞추어 바뀌기를
    바란다는 글을 썼습니다. 부활 절기에 부활의 싸인 즉 새 생명의 약속들 promises of new life 을 찾아 보면서 부활을
    기념하자고 권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계획과 뜻을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죽음과 파괴를 약속한 40여 명의 유대인에 맞서는 심정으로 나는
    생명과 건설의 흔적을 찾아 내려고 합니다. 비록 ‘골치 아픈’ 일이 ‘또’ 생기고 귀찮은 일들이 ‘자꾸’ 일어나지만 주님만 보고
    달리기로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나의 주님이십니다. 나는 부활 나라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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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로마인으로서 권위가 있고 적법한재판절차.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진 군중이나 권력자가 사유와 증거를 찾지 않고 사람을 죽이고 복수하는 것은 짐승같은 세상일뿐입니다. 백년전까지 사람을 재판없이 멋대로 처형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저는 엄중한 심판대에 분명히 섭니다. 하나님은 분노와 감정으로 저를 일방적으로 혼내지 않으실것이지만 제가 입을 다물수밖에 없는 증거와 사례를 보여주실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정신이 뻐쩍 듭니다. 내가 오직 살아있는 동안만이 뉘우치고 잘못 살아온 과거를 만회할수 있으니까요. 하루가 참 귀합니다. 부지런히 살아도 길지않은 시간입니다. 나의 교만, 미지근한 신앙, 비겁함 등 회개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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