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8장 1-10절: 성령의 주권

해설:

바울 일행이 당도한 곳은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몰타(개역개정 ‘멜리데’) 섬이었습니다(1절). 섬 사람들(개역개정 ‘원주민’)은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비가 내린 뒤여서 일행은 모닥불을 피워 한기와 싸우고 있었는데, 바울이 나뭇가지 묶음을 불에 넣으려 할 때 독사가 튀어나와 손을 뭅니다(2-3절). 섬 사람들은 정의의 여신(‘디케’)이 그를 심판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가 곧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4절). 그런데 바울은 아무 일도 아닌 듯 그 뱀을 불 속에 떨어 버립니다(5절). 섬 사람들은 바울이 독사에 물리고도 아무렇지 않자 그를 신으로 여깁니다(6절). 

그 섬의 추장인 보블리오가 이 소문을 듣고 바울 일행을 초청하여 사흘 동안 융숭하게 대접합니다(7절). 보블리오의 아버지가 열병을 앓고 있었는데, 바울이 그를 위해 기도하니 열이 가라앉습니다(8절). 그 소문이 섬 주민들에게 퍼지자 많은 병자들이 찾아와 치유를 받습니다(9절). 바울 일행은 그 섬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은 후에 로마로 떠납니다(10절).

묵상:

성령은 인간의 통제력을 넘어 역사하십니다. 인간이 성령의 역사를 관리하거나 통제할 수 없습니다. 성령은 에너지(혹은 기)가 아니라 인격이십니다. 따라서 사람이 성령을 ‘부릴’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원하시는 일을 이루십니다. 몰타 섬에서 성령께서는 바울을 통해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독사의 맹독에 해를 입지 않게 하시고, 많은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몰타 섬의 주민들에게 그런 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바울을 통해 항상 그렇게 역사하신 것은 아닙니다. 바울도 때로 영적으로 무력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는 2년 동안 벨릭스 총독을 만나 교제하며 전도했지만 그를 회심시키지는 못했습니다. 두 주간 동안 유라굴로 태풍에 시달릴 때 그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배멀미로 고생했을 것입니다. 때로 무력함에 처하도록 내버려 두시는 것도 역시 성령께서 선택하신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실패도, 무력함도, 고난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snake handler’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런 사람들에 대한 뉴스를 듣습니다. 그들은 회중 앞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독사를 제어하는 쇼를 벌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세력을 누를 권세를 주셨으니, 아무것도 너희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눅 10:19)라는 약속이 실제라는 것을 보이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철저히 불신앙적인 이유는 성령을 ‘부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이들은 성령의 주권적인 다스림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늘 그분의 임재를 기억하고 그분의 인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우리는 성령의 다스림 아래에 있습니다. 성령께서 필요하다고 판단하실 때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의 임재를 드러내 보여주실 것입니다.       

5 responses to “사도행전 28장 1-10절: 성령의 주권”

  1. 파산해서 힘들어 하는 공동체를 도움으로 악령이 지옥으로 떨어지고 불치의
    병들이 치유받는 성령의 역사를 기도합니다. 항상 땅 끝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꼭 붙들고, 주님의 임재를 피부로 느끼며 살기를 원합니다.
    임재를 느끼지 못할지라도 자족하고 감사하며 주님의 마음으로 섬기며 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가족들과 함께 치유와 구원의 하나님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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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겨우 살아 남은 그들이 탈진 상태로 섬에 올랐을 때 그들을 융성히 대접하는 섬 사람들의 순진함과 또 토속 신앙에 젓어있는 그 들의 일상 속에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일어난 기적들을 상상해 봅니다.
    우리 일상 속에 조용히 역사하시는 성령에 귀를 기우리며 순종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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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오늘도 겸손히 성령님께 내 삶을 맡기며, 그분의 임재를 구합니다. 내 기분과 상황들은 업앤다운이 있을 수 있으나, 나의 영혼은 잠잠히 하나님의 임재와 손길을 구하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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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또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감정을 저도 공감하기를 원합니다. 아이가 엄마에게 의지하듯 당신께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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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꽃길 대신 가시밭길을, 순풍 대신 폭풍을 경험하는 이유를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누구는 마른 데를 걷고 누구는 진 땅을 걷는 까닭도 다 찾아낼 수 없습니다. 설령 안다고 해도 고난의 무게를 줄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욥이 극심한 고통 중에 있을 때 그 원인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왜 그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안다면 견뎌내기가 조금 쉬우리라 생각했겠지요. 성령은 우리가 부리고 제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해설 말씀을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믿음 조차도 종교적 거래 행위로 여기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말하면서 내 의지나 바램을 꺾지 않는 때도 너무 많습니다. ‘나는 신이다’ 다큐멘터리에서 보는 것처럼 이단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이 아닌 교주를 경배한다는 것입니다. 교주에게 순종하고 교주에게 모든 것을 바칩니다. 몰타 섬에 바울과 로마행 일행이 도착한 뒤에 일어난 일들은 교주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을 법한 일입니다. 바울의 양심과 신앙이 섬 사람들을 은혜로 인도했습니다. 바울은 주님을 핍박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개하고 알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협력하고 돕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전도여행 기록 특히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가는 여정 중에 이렇게 많은 고난과 고비를 겪지 않아도 되었다면, 계획한대로 진행되었다면 그건 어떤 모습일까, 어떤 그림일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길’이나 ‘여행’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우리의 상태와 상황, 필요를 뜻하는 은유일 때도 많습니다. 바울의 로마길은 우리를 빚으시는 성령의 손길입니다. 바울의 순종이 길을 안내해 주고 그의 통찰이 우리에게 영감을 줍니다. 우리에게 가장 선한 것을 주시는 주님,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시는 주님을 믿고 따릅니다. 당장 편한 길, 쉽고 깔끔한 방법을 원하는 마음이 꺾여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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