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로마에 도착한 지 사흘만에 바울은 먼저 그곳에 사는 유대인들을 초청하여 자신이 로마까지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합니다(17-20절). 로마의 유대인들은 본국으로부터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으며 바울에 대해 나쁜 소문을 들은 적도 없다고 그를 안심을 시킵니다. 하지만 “이 종파” 즉 예수를 믿는 믿음에 대한 반대의 소리가 높으니 그 내막을 알고 싶다고 말합니다(21-22절). 그들은 약속을 정하여 얼마 후에 다시 만났고, 바울은 성경을 근거로 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합니다. 그 증거를 듣고 믿는 사람도 있었지만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불신앙이 이사야를 통해 주신 예언의 성취라고 믿습니다(25-28절).
그 이후로 바울은 주로 이방인들을 대상을 전도를 행합니다. 가택 연금 상태였기에 집으로 찾아오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30절). 누가는 바울이 이런 상태로 2년 동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가르쳤다”(31절)고 적습니다.
사도행전의 이야기는 이 지점에서 멈춥니다. 바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순교 이야기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네 가지의 해석이 있습니다. 첫째는 ‘초기 기록설’입니다. 바울이 순교 당하기 전에 누가가 이 책을 썼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둘째는 ‘절필 가설’입니다. 누가가 더 기록하기를 원했지만 박해 혹은 순교로 인해 더 쓰지 못했다는 설명입니다. 셋째는 ‘유실 가설’로서, 더 썼는데 전해지는 과정에서 뒷부분을 잃어 버렸다는 설명입니다. 넷째는 누가가 의도적으로 미완의 결말을 의도했다는 가설입니다. 사도행전의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하기에 진행형으로 끝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29장 이하는 독자가 계속 이어가야 하는 성령의 역사인 셈입니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를 확정할 증거는 아주 부족합니다. 하지만 사실이 어떻든지 사도행전의 역사는 계속 이어져가야 할 이야기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묵상:
사도행전의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기 전까지 성령의 역사는 지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들은 모두 그 역사에 동참하도록 부름 받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성령의 구원의 역사와 관계하여 세 종류의 사람을 발견합니다. 첫째는 ‘방관자’입니다. 성령께서 이루시는 구원 역사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오직 물질과 육신에 붙들려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반대자’ 혹은 ‘방해자’입니다. 그들은 성령께서 이루시는 역사를 보고 위협을 느낍니다. 그 위협 앞에서 회개하고 성령께 자신을 열어야 하는데 반대로 행동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지만 믿는다고 하면서도 전적으로 자신을 열지 못하여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셋째는 ‘참여자’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고 자신을 통해 그리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세 유형의 사람들이 오늘도 여전히 섞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럴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참여자로 부름 받고 또한 그렇게 살도록 인도하시는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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