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이 시편도 ‘할렐 찬양’에 속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이방 나라들에 의해 억압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방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2절)고 물으며 조롱합니다.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1절).
시인은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과 이방 나라들이 섬기는 우상이 어떻게 다른지를 묘사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3절) 분이십니다. 전능하시며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반면 우상은 땅에 있습니다. 클라스가 다르고 차원이 다릅니다. 사람이 금과 은으로 빚어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4-7절). 인간은 자신이 섬기는 것을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나 우상을 의지하는 사람은 모두 우상과 같이 되고 만다”(8절)고 시인은 말합니다.
이렇게 말한 후에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님을 의지하여라”고 권면합니다. 이방 나라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 당하고 있는 이유가 그들의 하나님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하나님보다 이방 나라들이 섬기는 우상이 더 강하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들이 의지할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9절). “아론의 집”(10절)은 제사장들을 가리킵니다. 시인은 백성들의 믿음을 지도하는 제사장들이 먼저 믿음에 있어서 본을 보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다음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11절) 즉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동일한 말로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12-13절).
마지막으로 시인은 축복의 기도를 반복합니다(14-15절). “하늘은 주님의 하늘”(16절)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서는 닿을 수 없는 초월적인 차원에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땅을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이 땅에서 복을 누리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시인이 이 시편을 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와 내세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은 주님을 찬양하지 못한다. 침묵의 세계로 내려간 사람은 어느 누구도 주님을 찬양하지 못한다”(17절)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하여 주셔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18절).
묵상:
이 시편은 포로기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조국이 패망한 후 이방 나라들 사이에 섞여 살아야 했던 유대인들은 신앙적으로 극심한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내적으로는, 그동안 믿고 의지해 왔던 하나님에 대한 의문과 회의와 불신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들의 상황은 하나님에게서 버림 받은 것 같았습니다. 혹은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속고 있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이방 민족들이 유대인들과 그들의 하나님을 조롱했습니다.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이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보다 더 강하다고 자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인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놓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이방 민족들은 유대인들의 상황을 보고 “너희의 하나님은 너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2절)고 물으며 조롱하는데,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그분은 초월자이고 전능자이십니다. 이방 민족이 믿고 섬기는 우상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분에게는 “인자하심과 진실하심”(1절)이 있습니다. 지금 비록 그분이 그들에게서 손을 뗀 것처럼 보이지만, 그분의 사랑은 변함 없고 당신이 맺은 약속을 틀림없이 지키십니다. 따라서 현실 상황에 짓눌리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분이 결국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물리적인 세계 안에 사는 육체적인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에 영향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풍요와 안락함이 지속되면 영적으로 부패하기 쉽고, 고난과 역경이 지속되면 믿음을 잃어 버리기 쉽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기억하고 그분을 경외하며 매일 그분께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이 한결같은 믿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