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7편: 무상함을 대하는 자세

해설:

전체 시편 중에서 가장 짧은 시편입니다만, 시편 전체의 핵심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시편은 모짜르트를 비롯해 많은 작곡가들에 의해 찬송으로 만들어져 불렸습니다. 

1절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라는 부름이고, 2절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해야 할 이유를 밝힙니다. 대상은 “모든 나라들”과 “모든 백성들”(1절)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인류와 모든 생명의 하나님이십니다. 

2절의 “인자하심”(히브리어 ‘헤세드’)과 “진실하심”(히브리어 ‘에메트’)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말할 때 가장 자주 사용된 단어입니다. ‘헤세드’는 변함없는 사랑(steadfast love)을, ‘에메트’는 변함없는 신실함(enduring faithfulness)을 의미합니다. 두 단어 모두 ‘변함없음’, ‘지속성’, ‘다함 없음’, ‘영원함’의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언제나 그분을 의지하고 우리의 인생을 맡길 수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이시기에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묵상:

불교는 이 세상 만물의 ‘무상함'(끊임없이 변화함)을 주목합니다. 세상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이 없고 모든 것은 무심하게 순환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정확한 현실 인식입니다. 이 현실 인식에 기독교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무상함에 대한 해법에서 차이가 납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무상하니 아무 것에도 붙들리지 말고 무상한 변화에 자신을 내맡기고 살아가라고 가르칩니다. 반면, 성서는 세상 만물이 무상하니 유상한 것 즉 영원한 것에 눈을 돌리라고 합니다. 이 세상 만물에서 볼 수 없는 참됨과 영원함이 하나님에게 있으며, 인간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변함 없음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의 무상함을 체념으로 외면하려 할 것이 아니라 무상함 너머에 있는 영원한 것을 보라는 뜻입니다. 그 영원한 것을 보고 다시 현실을 보면 만물의 무상함이 창조주의 현란한 조화로 보입니다. 그 신비와 조화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올립니다.  

6 responses to “시편 117편: 무상함을 대하는 자세”

  1. 신실하신 주님의 선 하심과 인자 하심이 반드시 믿음의 공동체에 임재 하셔서
    믿음의 가족들이 여호아와 평생 동행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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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Jason H Yoon Avatar
    Jason H Yoon

    주님의 신실 하심에 바탕을 둔 변함 없는 사랑과 자비에 끊임 없는 감사를 드리며 온 우주와 온 나라와 온 땅들이 주님게 경배하며 찬송이 끊이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주님만이 진실임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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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무상함을 넘어 영원함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한 차원이 다른 삶, 그 길을 사는 순례자의 삶을 기억합니다. 전능자의 그늘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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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Koinonia2022 Avatar
    Koinonia2022

    세상이 급하게 변합니다. 정치환경도 유행도 가치관도 직업관도 삼십년전과 많이 다릅니다. 원칙이 상황에 따라 변해도 되는것처럼 그래야 유연하고멋진것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힘들지만 원칙을 지키고 살아보겠습니다. 로마에서 사자밥이 되면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요즘은 논쟁을 피하기 위해, 우정을 지키기위해 신앙문제에 있어서 너무 쉽게 타협하는 저를 발견합니다. 교회를 비웃고 탄압하는 그룹에 비겁한 침묵으로 동조합니다. 제게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도와주세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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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우리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을 알기에 변하지 않는 것을 찾는가 봅니다. 115편에서 우상에 대한 묘사를 할 때 우리는 우상의 무능함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우상에게 의지해본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오늘 시편은 여호와의 사랑과 신실하심이 영원하다고 말합니다. 그 사랑과 신실함의 대상이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변하고 상하고 끝이 나지만 영원하신 분이 우리를 붙드시고 품어 주시기에 괜찮습니다.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수많은 인연을 맺고 삽니다. 모든 인연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감당할 몫입니다. 헤어지는 것이 싫다고 만나는 것을 막거나 거부할 수 없습니다. 헤어짐이 상실과 고통이 될 때가 있고, 해방과 행복이 될 때도 있습니다. 상실감으로 가득찰 때 영원하신 주님께 기댑니다. 주님 안에 나의 상실을 새깁니다. 기록합니다. 행복의 문을 여는 헤어짐 앞에서도 주님을 찬양합니다. 굽은 것을 펴시고 상한 데를 싸매고 낫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사랑과 신실하심으로 우리를 대하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우리의 약함을 사랑으로 덮으시는, 변함없는 – 꾸준하고 일정하며 평안하게 하시는 –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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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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