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편 1-40절: 복된 삶을 위한 기도

해설:

1절부터 8절까지는 모두 히브리어 알파벳 ‘알레프’로 시작합니다. 먼저, 시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사는 사람은 복 있다고 말합니다(1-3절).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길을 따라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4-8절). 

9절부터 16절까지는 모두 히브리어 알파벳 ‘베이트’로 시작되는데, 율법을 따라 사는 것은 “인생을 깨끗하게 살 수 있게”(9절) 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고백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으면 죄의 길에 들어서지 않게 됩니다(10-11절). 그뿐 아니라 주님의 교훈을 묵상하며 그 길을 따르는 것은 그것 자체로 큰 기쁨입니다(12-16절). 

17절부터 24절은 모두 히브리어 알파벳 ‘김멜‘로 시작하는데, 시인은 자신이 율법을 깨달아 알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17-18절). 율법의 뜻을 이해하고 깨치는 것이 너무 어려워 마치 하나님께서 그 뜻을 감추고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19절). 그 뜻을 깨우치려고 애쓰다가 쇠약해질 정도입니다(20절). 오만한 자들은 주님을 멸시하며 주님의 율법을 따르는 자신을 또한 멸시합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오직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하고 지키기를 다짐합니다(21-24절). 

25절부터 32절까지는 모두 히브리어 알파벳 ‘달렛’으로 시작합니다. 시인은 오만한 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주님의 법을 따르는 것은 때로는 손해 보는 일이요 무시 당하는 일이며 수치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기를, 시인은 구합니다(25절, 28절, 31절). 시인에게 수치는 고난 당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33절부터 40절까지는 모두 히브리어 알파벳 ‘헤이‘로 시작합니다. 시인은 자신에게 율법을 깨닫게 해 주셔서 헛된 것에서 기쁨을 찾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탐욕에 휘둘리고 결국 믿음을 놓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오만한 자들은 “하나님이 있나 보라”면서 쾌재를 부를 것입니다. 따라서 시인의 오직 한 가지 바램은 평생토록 하나님의 길에서 떠나지 않도록 보호 받는 것입니다.

묵상:    

율법은 ‘인간 사용 설명서’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죄성에 물든 인간이 스스로 복을 누리고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는 길을 안내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율법은 인간의 죄성을 전제하고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완전한 이상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죄성으로 인해 인간이 그처럼 높은 수준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죄성을 가진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을 제시한 것입니다. 인간의 죄성을 적절한 정도에서 절제 하면서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는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한 욕망의 차원에서 보면 율법은 억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또한 변화하는 상황에서 율법에 배여 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실행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인은 그 뜻을 찾느라 영혼이 쇠약 해졌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율법의 의미를 깨닫게 해 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율법을 버리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묵상하고 그 율법을 행하는 것 자체에서 기쁨을 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오만한 자들이 득세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정은 오늘에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뜻을 행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두 가지의 기도는 늘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소서. 그 뜻을 살뜰히 실천하며 살게 하소서. 아멘.

2 responses to “시편 119편 1-40절: 복된 삶을 위한 기도”

  1. Jason H Yoon Avatar
    Jason H Yoon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야성을 억누르고 오직 주님의 율례를 따라 살아 가도록 이끌어 주시고 주야로 주님의 율례를 묵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길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내 안에 있는 죄성을 불쌍히 여기시어 너그러이 받아 주시고 주님의 영에 합당한 하루하루가 되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도 감사의 하루로 주님을 찬양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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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시편 119편에는 특별한 뜻과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결혼하고 2년 뒤에 첫 아이를 낳았습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같이 살고 있었는데 첫 손녀를 보신 부모님의 사랑이 남달랐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친정 엄마가 돌아 가셔서 산후 조리를 하러 갈 친정이 없었던 나는 시어머님의 정성과 보살핌 속에서 회사에서 주는 30일 출산 휴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성 직원이 결혼을 하면 ‘무조건’ 회사를 그만 둬야 하던 룰을 없애 직장 생활을 계속하게 한 것도 파격적이었지만 이른바 ‘사내결혼’을 했던 우리는 둘 중에 한 사람이 이직해야 하는 불이익도 없이, 게다가 출산하고 돌아와도 자리가 보장되는 좋은 직장을 다니는 행운아들이었습니다. 아기도 건강하게 태어났고, 삼시세끼 미역국을 끓여 ‘바치는’ 어머니와 인자하고 이해심 많으신 아버지가 계시는데, 그래서 부러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데, 출산하고 한 주간 정도 지난 뒤부터 갑자기 눈물이 많아지고 마음이 그저 불안해지기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도 일종의 산후 우울증이었는데 그 때는 몰랐습니다. 친정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가장 ‘싫었고,’ 이 어린 ‘딸’을 무서운 세상에서 어떻게 키울 까 너무 무서웠고, 휴가가 끝난 뒤에 다시 출근할 일이 까마득하게만 여겨지고 가장 이기적인 엄마가 되는 것 같아 벌써부터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그 때 책상에 앉아 성경을 펼쳐 읽은 데가 시편 119편이었습니다. 교회는 오래 다녔어도 성경에 대해서는 잘 모르던 나는 시편을 펴놓고 여기 저기 읽고 있었는데 119편 (히브리 알파벳으로 된 시편이라는 것도 모르는채)을 읽는 중에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마음은 이상하게 평안해지던 것을 경험했습니다. 눈물의 카타르시스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성령님의 위로였습니다. 119편에는 주의 법, 교훈, 명령… 이런 단어들이 빼곡히 등장하는데 남편과 나는 출산 전부터 아기 이름을 (딸이든 아들이든) ‘하나님의 법’이라는 뜻의 한자로 짓고 부모님 허락도 받은 상태였습니다. (둘째를 기다리면서는 ‘하나님의 시간’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니 119편은 나를 위해 쓴 시편처럼 느껴졌고, 시도 때도 없이 우울하던 나는 하루에도 몇 번 씩 119편을 읽고, 또 공책에 쓰기도 하면서 산후조리를 했습니다. 36년 전인데도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4월 중순에 아기를 낳고 5월에 회사로 복귀했으니 지금이 119편을 읽던 36년 전 그 때입니다. 그렇게 소중한 말씀을 이 아침에 마주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교회에 중요한 일이 있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늘 우리와 함께 하기에 두렵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신 36년 전의 성령님이 오늘도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교훈과 명령은 우리를 묶는 것이 아니라 풀어 주신다는 진실을 36년 내내 배우게 하신 성령께서 오늘도 깨우쳐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의 의로움으로 나의 영혼을 새롭게 하소서 (40절)” 우리 교회를 새롭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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