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0편: 영적 이방 땅에서 

해설:

첫 번째 순례자의 노래에서 시인은 “내가 고난 받을 때에 주님께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해 주셨다”(1절)고 고백합니다. “고난 받을 때”는 이방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야 했던 자신의 처지를 암시합니다. 물리적으로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산다는 사실이 마치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사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율법을 따라 사는 것은 고난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이미 시편 119편에서 거듭 고백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 드릴 것을 간절히 갈망하면서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셔서 순례길에 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시인은 자신이 살고 있던 상황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는 “사기꾼들과 기만자들”(2절)에게 둘러 싸여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메섹 사람의 손에서 나그네로 사는 것” 혹은 “게달 사람의 천막에서 더부살이하는 것”(5절)과 다름이 없다고 말합니다. “메섹”은 흑해 근처에 살고 있던 부족의 이름이고 “게달”은 아라비아 반도의 한 부족을 가리킵니다. 당시로서는 야만적이고 잔인한 부족으로 알려져 있던 사람들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더불어 살고 있는 사람들도 그 야만적인 부족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자신은 진실을 추구하는데 그들은 거짓을 말합니다. 자신은 정직하게 살기를 원하는데, 그들은 속임수를 자랑합니다. 자신은 평화를 원하는데 그들은 전쟁을 즐깁니다(7절). 시인은 자신이 처한 곳이 지리적인 의미에서 이방땅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에서 이방땅에 살고 있음을 절감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구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2절). 진실과 정직과 평화를 찾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결국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3-4절).

묵상:

시인은 자신이 지리적인 의미에서의 이방땅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에서의 이방땅에 살고 있음을 자각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 살기를 힘써 왔습니다. 하지만 그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은 그와는 정반대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자신처럼 사는 사람들은 소수이고, 절대 다수는 타락한 욕망을 따라 야만성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며 사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세상은 자신과 다르게 사는 사람을 그냥 두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조롱하고 무시하고, 때로는 억압하고 박해 하며, 때로는 제거하기를 음모합니다. 시인은 세상으로부터의 압박을 느끼며 흔들립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계속 그렇게 살아갈 수가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 등지고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모든 죄악을 심판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합니다. 믿는 까닭에 감당해야 하는 손해와 모욕과 고난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자신을 보호해 주시기를!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뵈올 날이 속히 오기를!

시인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땅에서 영적으로 이방땅에 사는 유배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얼마나 다르게 살고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그 길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는 부르짖음의 기도가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성소에서 주님을 뵙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있는지를 또한 자문해 봅니다. 

5 responses to “시편 120편: 영적 이방 땅에서 ”

  1. Kim1001@comcast.net Avatar
    Kim1001@comcast.net

    자녀로 삼으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최악으로 물들어있고
    거짖과 살생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보이지않는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 만을
    의지합니다. 수단의 내분과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하루속히 종결시켜 주십시오.
    평화의 왕 만유의 주님의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는 아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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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기독교에 뿌리를 둔 국가이면서 세계 평화와 선교에 선구자 역활을 하며 성장해 온 미국이 어떻게 하다 세계 모든 분쟁 지역에 민주와 자유를 앞세워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가담하여 살상이 이루어지고 있음이 현실입니다, 주님 미국이 첫 청교도의 믿음을 회복하게 해 주시고 억지로 적을 만들어가지 말고 모든 국가와 함께 평화를 추구하는 국가로 이끌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평화로운 오늘과 내일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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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하나님의 지혜와 거룩하심을 구하는 하루입니다.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오늘도 믿음으로 서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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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이방사람들이 사는 곳과 믿지 않는 자들 가운데에서 그냥 버리두시지 않으심을 믿습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와 사귀며 살아갈때 밤에는 불기둥, 낯에는 구름기둥으로 험난한 인생길에서 나를 인도해주실 것을 믿고 담대하게 걸어가는 오늘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맨.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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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곳에 있는 시인이 노래합니다. 고통 가운데 부르짖었더니 대답하셨다고 찬양합니다. 장소와 상관없이 우리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지가 시인의 관심사입니다. 주께서 대답하셨다고 찬양하는 것은 그의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평화가 임했습니다. 1972년에 하인리히 뵐이 노벨 문학상을 받습니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세계문학전집’을 길잡이 삼아 정신적 여행길을 시작한 사춘기 아이였습니다. 쉬운 책, 어려운 책을 가릴 줄도 몰랐고, 작품의 배경과 작가의 집필 시기를 비교하는 일도 잘 할 줄 몰랐습니다. 하인리히 뵐이 노벨 상을 받음으로 서점에는 그의 책들, 특히 그가 수상하기 20년 전인 1951년에 쓴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책이 판매대 맨 앞에 놓여 있었는데 2차 세계대전에 병사로 싸운 주인공의 이야기였습니다. 노벨 문학상과 관련해 이 책 제목만큼 마음에 깊이 들어온 제목은 없습니다. 창세기에서 빌려온 제목이라 더욱 그럴 것입니다. 창세기의 질문이나 뵐의 소설이나 하나님이 아담의 소재 location 가 알고 싶어 물으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이 묻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 질문의 질문자는 아담 자신 곧 우리이기도 합니다. 있었다/있다의 시제도 물리적 장소(예루살렘)와 인식(예배드림)을 병행하듯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품기도 합니다. 시인의 고통은 예배할 수 없는 곳에 있다는 데서 시작합니다. 예배해야 하는데, 여호와의 집에 가야 하는데 너무 멀리 있어서 불행합니다. 하지만 그는 주께서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찬양은 ‘예배를 드리러 올라가는 자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지 모릅니다. 어디에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제 읽은 119편 마지막에서 시인은 ‘종을 찾아주소서’ 기도합니다. 오늘 120편에서는 ‘나를 찾으라’ 하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들과 너무 오래 살았다는 시인의 고백은 주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과 오래 살아 삭막하고 버석 거리는 마음으로 하는 한탄입니다. 매일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 곳이면 어디든 괜찮습니다. 어디에 있든 주님을 찾을 수 있으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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