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1편: 지키시는 하나님

해설:

두 번째 순례자의 노래는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 받아 온 시편입니다. 찬양의 가사로도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본다”(1절)에서 ‘산’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전이 세워져 있는 시온산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순례길에 오른 사람은 마음의 눈으로 시온산을 상상하면서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내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내 도움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님에게서 온다”(1-2절)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순례길에 오른 이유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일반적인 산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산들은 대개 거대한 돌산입니다. 적군이 쳐들어 온다 해도 숨을 곳이 없습니다. 따라서 “내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1절)라는 질문은 “아무 곳에서도 도움을 찾을 수 없다!”는 탄식일 수 있습니다. 위험을 피해 숨을 수 있는 도움은 하나님의 그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내 도움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님에게서 온다”(2절)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도움에 대해 설명합니다. “내가 헛발을 디디지 않게 지켜 주신다”(3절)는 고백은 순례길에 오른 사람의 상황에서 하는 고백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을 지키시느라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4절)십니다. 하나님을 사람에 빗대어 표현한 것입니다. “주님은 네 오른쪽에 서서”(5절)라는 말은 더 이상 좁힐 수 없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에 있기 때문에 순례자를 해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중동 지방의 지형과 기후에서 낮에 “그늘”(5절)을 발견하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낮의 햇빛으로 인해 해를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6절). 밤의 달빛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해를 당하는 일도 자주 일어나곤 했습니다(6절). 시인은 순례길에서 당할 수 있는 전형적인 두 가지 해(害)를 언급하면서 주님께서는 “이제부터 영원히”(8절) “모든 재난에서”(7절) 지켜 주실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묵상: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두 번째 순례자의 노래에서 “지키다”라는 단어가 여섯 번 사용됩니다(새번역에는 일곱 번 나오는데, 번역 과정에서 문맥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하나가 더해진 것. 개역개정에는 여섯 번 나옴). “지키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샤마르’는 “지켜 보다”(watch over)라는 뜻이기도 하고 “보호하다”(guard)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는 두 가지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늘 지켜 보십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의인화하여 우리를 지키시되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신다”(4절)고 고백합니다.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은 환상 중에 본 인자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눈은 불꽃과 같다”(계 1:14)고 했습니다. 꿰뚫어 보는 눈을 의미합니다. 속속들이, 빠짐없이, 정확하게 보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지켜 보심에 대해 예수님은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마 10:30)고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분은 당신의 백성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십니다. 마치 자애로운 부모가 어린 자녀를 지켜 보면서 위험할 때마다 손을 뻗어 보호해 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렇게 보호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조종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또한 계시를 주셔서 그분의 뜻을 따라 스스로 행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지켜 보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부족함으로 인해 혹은 이 세상의 죄악으로 인해 우리가 위험한 지경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은 전능의 팔을 펴셔서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 말은 믿는 이들은 이 세상에서 아무런 고난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때로 당하는 고난조차도 그분의 살피심과 보호하심 안에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분이 아시고 그분이 허락하시는 것이라면, 고난도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믿습니다. 

5 responses to “시편 121편: 지키시는 하나님”

  1.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지금까지 80년이 넘도록 살아
    온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 이었습니다. 얼마 남지않은 삶도 주님의 인자하고
    선 하심으로 인도하실줄 믿고 의지합니다. 힘들고 어려웠을 때에도 주님께
    함께하셨고 즐겁고 편안했을 때에도 주님의 축복이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하늘의 은혜를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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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우리가 감담 할수 있는 시험밖에 안주시며 혹 시험을 받는다해도 피할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밤낮으로 말씀을 통해 돌봐주시고 옳은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주의 길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나갈 때나 들어 올 때나 오직 주님 만을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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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를 구합니다. 맞습니다! 고난도 하나님 안에서는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믿습니다. 그 고난과 역경을 잘 건너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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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며칠 사이에 격화되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로켓을 발사해 마치 불꽃놀이라도 하는 듯이 하늘을 밝힌다고 하고, 민간인 사망자 중엔 노인도 어린이도 들어 있답니다. ‘눈을 들어 산들을 바라본다’는 시인의 절절한 마음이 죽음을 실은 폭탄이 하늘을 번쩍! 가르며 땅 위로 떨어지는 현실 앞에서 무참히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산’의 의미가 하나가 아니듯 우리가 눈을 들어 산을 보고 하늘을 본다는 뜻은 시간과 공간이 한데 합쳐졌다는 뜻입니다. 공간 속에 위치한 산이나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눈이지만 마음으론 하나님을 갈망하며 찾고 있는 때입니다. ‘본다’는 것 속에 얼마나 깊은 뜻이 담겨 있는지요. 산을 보며 하나님의 얼굴을 찾습니다. 어린 아기가 엄마의 얼굴을 찾으려고 여기 저기를 봅니다. 낯 선 무리 속에서 아는 얼굴 하나를 찾기 위해 우리는 두리번거립니다. 여호와도 우리를 봅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언제나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이를 감시라고 보는 것은 경직된 종교심이 하는 말이고, 은혜라고 보는 것은 주관적 경험에서 나온 말일 것입니다. 주관적인 경험이 쌓이고 주님과의 사귐이 깊어지면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며 나를 보시는 그분 앞에서 나 또한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그분의 얼굴을 보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이 시도 예배드리러 올라가는 사람의 노래인 것이 분명합니다. 산을 보고 하늘을 보는 마음은 주님을 찾는 마음입니다. 그 산에서, 그 하늘에서 폭탄이 날라와도 또 눈을 들어 산과 하늘을 보겠지요. 선하신 주님을 따라 선을 행하며 살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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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지금 저에게 간절히 필요한 지혜와 평화를 주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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