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2편: 거룩한 성

해설:

세 번째 순례자의 노래는 예루살렘에 대한 찬양입니다. 순례자는 지금 예루살렘 성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벌써 그곳에 가 있습니다. 그래서 순례길을 떠날 때부터 그의 마음은 설렜다(1절)고 말하고, 또한 “예루살렘아, 우리의 발이 네 성문 안에 들어서 있다”(2절)고 고백합니다. 몸은 아직 멀리 있지만 마음은 이미 예루살렘 성문 안에 있습니다. 

3절부터 5절까지에서 시인은 예루살렘을 찬양합니다. 그 도시는 거룩한 도시 답게 물리적으로도 흠이 없습니다(3절).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전례에 따라”(4절)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납니다. 유월절/무교절, 칠칠절(오순절) 그리고 수장절(초막절/장막절)은 순례 축제로서 예루살렘 바깥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기간을 예루살렘에서 보내는 것을 꿈꾸었습니다. 

이어서(6-9절) 시인은 예루살렘을 위해 축복합니다. 이 시편에서 시인은 “평화”라는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합니다(6절 2회, 7절 2회, 8절).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평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샬롬’은 전쟁이 그친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고 삶의 모든 조건이 온전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선민으로서 다른 민족에게 제사장 백성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했습니다. 제사장 나라의 수도인 예루살렘은 선택 받은 도시로서 모든 세상이 마땅히 되어야 할 모습을 보여 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예루살렘을 위해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 이름 그대로 평화가 그 도성에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그럴 때 그 평화가 이 세상을 흘러나갈 것입니다.

묵상:

‘평화의 도성’ 예루살렘은 아이러니 하게도 ‘불화의 도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는 성전터를 점령한 요르단 군인들이 언제 일어날지 모를 전투적 유대인들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예루살렘은 이 세상 도시 가운데 가장 행동과 출입이 불편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 시인이 호소한 것처럼 그 도성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도시에 평화를 회복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생각이 서로 다릅니다. 유대인들은 그 땅을 무슬림으로부터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슬림은 유대인들을 완전히 몰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해법을 다른 곳에서 찾습니다. 지상의 예루살렘은 지금의 상태로 ‘불안한 평화’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이 불안한 평화가 지속가능한 평화로 바뀌는 것은 아래로부터가 아니라 위로부터 가능합니다. 그것이 사도 요한이 환상을 통해 보았던 새 예루살렘(계 21:9-27)의 비전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고 그 안에 새 예루살렘이 임할 때 진정한 평화는 자리 잡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은 잠정적인 평화일 뿐이고 항구적인 평화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프레데릭 웨덜리(Frederic Weatherly)가 작사하고 마이클 메이브릭(Micheal Maybrick)이 곡을 써 만든 ‘거룩한 성’이라는 찬송을 기억합니다. 지금은 비록 꿈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그 거룩한 성이 언젠가 임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 성에서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계 21:27)은 그 거룩한 성에서 함께 영원히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5 responses to “시편 122편: 거룩한 성”

  1. 땅 끝까지 같이 하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감사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불만과 분쟁과 멸망 밖에 없는것을 고백합니다. 교회와 가정과 나라에 임재 하시고
    통치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섬기고 나누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공동체에서 하늘의 신령한 사랑과 기쁨과 평화를 간절히 기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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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평화의 도성 예루살렘이 화약고로 변해 70년대에 로마군단에 이해 무참히 파괴되고 700년대에는 무슬름에 의해 점령되어 모슬름 사원이 구축되더니 1100년대에는 십자군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다가 1400년대에 오토만의의해 수리되고 근대에 와서 영국의 식민지를 거처 욜단에 내 맡겨지는 분쟁의 도시로 마치 우리 삶의 우여곡절을 연상게 하는 도시지만 끝내는 주님의 섭리아래 새 하는과 새 땅으로 다시 평화가 회복 될 것을 믿고 기도합니다, 지금도 분쟁으로 세계 각 처에서 살생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주님 그 곳들을 눈여겨 보시고 인간의 허영심과 끊이지 않는 욕망을 불쌍이 여기시어 모든 분쟁과 갈등을 해결해 주시고 주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으로 평화를 내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인간의 죄성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평화의 예루살렘을 되돌려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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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인간의 본성, 소유의 욕망으로 뭉처있는 한 세계는 분쟁속에서 헤메이고 죽음을 맞게 될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인간의 문명의 발달로 점점 황폐화되어가는 하늘과 바다와 땅이 증명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온 세상을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방법은 인간으로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오로지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 어서오셔서 새하늘과 새땅을 이루어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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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aekhwan - T.K. Lee Avatar
    Taekhwan – T.K. Lee

    한 차원이 높은 관점, 이 땅과 영원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소망이 아닌 영원한 것을 위한 소망을 내 삶에 쌓아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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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어제는 어머니날이었습니다. 교회에서는 교단 탈퇴 의사를 묻는 교인총회 투표 주일이었습니다. 오늘 새벽에 예루살렘을 찬양하며 예배를
    드리러 올라가는 이들의 노래를 읽으니 눈 앞에 있는 ‘보이는’ 것과 그 너머의 ‘참된’ 것에 대한 묵상을 하게 됩니다. 성서가 그리는
    예루살렘은 완벽한 하나님의 도시입니다. 하나님과 백성이 함께 사는 성입니다. 평화가 실현된 곳, 평화가 숨쉬는 도시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을 그렇게 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교우의 아들이 바이오 리서치 산업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이스라엘 출장이 자주 있습니다.
    텔아비브 인근이라는 것 같은데 미국에서 직원들이 교대로 가서 몇 주간씩 근무를 합니다. 교우의 아들 다음으로 이스라엘에 들어간 직원이
    일주일도 안되어 도저히 못 있겠다고 해서 아들이 내일 다시 이스라엘로 가게 되었다며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전쟁 중인 데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겠지만 부모의 마음은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제는 또 어머니 날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수고와 희생에 감사를 드리며 축하하는
    날입니다. 특별하게 이름을 붙여 기념하는 날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고 산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어제 모처럼 행복감에
    취한 어머니에겐 좋은 날이었습니다. 어머니라고 할머니라고 대우해주고 축하해 주니 고맙기 그지없지만 나의 어머니와 시어머니 생각이 나기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기에 어머니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나를 태어나게 한 어머니와 내가 어머니! 라고
    부르는 어머니가 다 같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살아계셔도 지금의 어머니와 기억 속의 어머니는 같은 분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나
    또한 늘 ‘같으면서도 다른’ 어머니입니다. 혹시 예루살렘도 그럴까요. 시인의 발이 닿기도 전에 마음으로 먼저 도착한 도성 예루살렘은
    평화와 영원의 징표일 뿐 평화와 영원을 찾을 수 없는 도시입니다. 많은 날 중에 하루를 정해 어머니를 기리듯, 세상에 없는 평화가
    이곳에는 있다고 믿는 것과 같은…우리 교회는 교단에서 탈퇴하자는 교인 수가 남아 있자는 교인 수보다 크게 많지 않았습니다. 표
    차이가 27표 뿐이었으니 앞으로도 팽팽하게 대립할 것으로 보입니다. 몇 년 전에 동성애에 대한 교인의 의사를 묻는 여론조사에서는 90
    퍼센트를 훌쩍 넘었던 보수적인 교회지만 교단을 떠나는 문제에 있어서는 현실적인 대안이나 명분이 약하다는 판단이 앞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는 모두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엎드려 자신의 허물을 먼저 고하고 주님의 선하심을 구하기를 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너머 영원한 도시 예루살렘을 볼 수 있도록 마음을 깨끗이 닦고 또 닦기를 원합니다. “예루살렘의 성벽 안에 평화가 있고, 예루살렘 성
    안에 안정이 있기 바랍니다 (7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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