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열 번째 순례자의 노래에서 시인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노래합니다. “내가 어릴 때부터”(1절)라는 말은 이스라엘 역사의 이른 시기를 가리킵니다. 족장들의 시대를 가리킬 수도 있고,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 하던 때를 가리킬 수도 있으며, 광야 유랑과 가나안 정착 시대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주변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이스라엘은 항상 외침에 시달렸습니다.
“여러 번”(1절)이라는 표현은 실제 이스라엘이 당한 고난의 분량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합니다. 원수들의 침략은 빈번했고 또한 잔인했습니다. 시인은 밭갈이를 비유로 삼아 그 고난을 표현합니다(3절). 상상만 해도 치가 떨리는 고통을 이스라엘 백성은 수 없이 겪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많고 잔인했던 침략에도 불구하고 살아 남았다는 것은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들은 나를 이겨내지를 못했다”(2절)고 고백합니다. 시인은 그 기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잊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의로우신 주님께서 악인의 사슬을 끊으시고, 나를 풀어 주셨다”(4절)고 고백합니다. 그들이 그 많고 지독한 고난을 견디고 살아 남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이스라엘을 배척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배척하는 것이 됩니다. “시온을 미워하는 사람”(5절)은 마치 “지붕 위의 풀같이”(6절) 되어 버림 받게 될 것입니다(7-8절).
묵상:
“그들은 나를 이겨내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님에게 든든히 연결되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여기서 “그들”은 우리의 삶을 흔드는 모든 세력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무고히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우리의 삶의 터전을 흔드는 질병이나 사고일 수도 있으며, 경제적인 문제나 심리적인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인생 여정에는 그런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적군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처럼, 우리 존재도 수 많은 위험 요소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그로 인해 심한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 고난은 마치 등에 깊은 고랑이 파이는 것처럼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통조차도 나를 이기지 못합니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첫째, 그런 일을 당해도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고난도 그분의 섭리 안에서 주어지는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마 10:28)처럼, 우리의 육신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다스리시는 분, 우리의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까지 다스리시는 분, 우리의 시간만이 아니라 영원까지 다스리시는 분을 믿습니다. 그분 안에 있는 한 우리는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전능자의 그늘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지붕 위의 풀”(5절)처럼 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믿음에 이르기 위해 이 아침에도 하나님의 품을 파고 듭니다. 그분의 정원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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