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9편: 아무도 나를 이겨내지 못한다

해설:

열 번째 순례자의 노래에서 시인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노래합니다. “내가 어릴 때부터”(1절)라는 말은 이스라엘 역사의 이른 시기를 가리킵니다. 족장들의 시대를 가리킬 수도 있고,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 하던 때를 가리킬 수도 있으며, 광야 유랑과 가나안 정착 시대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주변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이스라엘은 항상 외침에 시달렸습니다. 

“여러 번”(1절)이라는 표현은 실제 이스라엘이 당한 고난의 분량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합니다. 원수들의 침략은 빈번했고 또한 잔인했습니다. 시인은 밭갈이를 비유로 삼아 그 고난을 표현합니다(3절). 상상만 해도 치가 떨리는 고통을 이스라엘 백성은 수 없이 겪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많고 잔인했던 침략에도 불구하고 살아 남았다는 것은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들은 나를 이겨내지를 못했다”(2절)고 고백합니다. 시인은 그 기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잊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의로우신 주님께서 악인의 사슬을 끊으시고, 나를 풀어 주셨다”(4절)고 고백합니다. 그들이 그 많고 지독한 고난을 견디고 살아 남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이스라엘을 배척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배척하는 것이 됩니다. “시온을 미워하는 사람”(5절)은 마치 “지붕 위의 풀같이”(6절) 되어 버림 받게 될 것입니다(7-8절).

묵상:

“그들은 나를 이겨내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님에게 든든히 연결되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여기서 “그들”은 우리의 삶을 흔드는 모든 세력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무고히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우리의 삶의 터전을 흔드는 질병이나 사고일 수도 있으며, 경제적인 문제나 심리적인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인생 여정에는 그런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적군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처럼, 우리 존재도 수 많은 위험 요소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그로 인해 심한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 고난은 마치 등에 깊은 고랑이 파이는 것처럼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통조차도 나를 이기지 못합니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첫째, 그런 일을 당해도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고난도 그분의 섭리 안에서 주어지는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마 10:28)처럼, 우리의 육신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다스리시는 분, 우리의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까지 다스리시는 분, 우리의 시간만이 아니라 영원까지 다스리시는 분을 믿습니다. 그분 안에 있는 한 우리는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전능자의 그늘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지붕 위의 풀”(5절)처럼 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믿음에 이르기 위해 이 아침에도 하나님의 품을 파고 듭니다. 그분의 정원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립니다. 

4 responses to “시편 129편: 아무도 나를 이겨내지 못한다”

  1. 지금까지 오직 주님의 보호아래 살아 왔습니다. 기근때 전쟁중에 전염병 가운데
    서도 전능하신 주님의 그늘 아래서 인것을 고백합니다.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도
    허락하신 영적훈련 이었습니다. 마지막 숨질때까지 믿음의 가족들과 함께 승리의
    깃발을 들고 주님뒤를 따르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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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에게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짝에 빠져있을 때도 늘 함께하여 주시고 쉴만한 물가로 또 푸른 초장으로 이끌어 주시는 주님 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주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않고 깨어 있기를 소망합니다.
    내 영혼이 맑게 깨어있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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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을 믿는 민족과 나라는 죽지 않고 망하지 않습니다. 비록 몸은 죽으나 영혼은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 살수 있다는 믿음때문입니다. 오늘도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고 조국통일과 복음전파를 위해 기도하는 하루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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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욥이 생각나게 하는 시입니다. 물론 욥은 어릴 때부터 고난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처럼 여러 번 고통 중에 놓였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에서 욥이 보입니다. 고난에 ‘저항하는’ 시인의 모습이 욥처럼 보입니다. 적극적인 대항이 아니라 침묵하고 인내하는 중에 이겨내는 대항입니다. 고난을 주는 원수를 찾아가 싸워서 이기는 승리가 아니라 고스란히 당하면서도 쓰러지지 않음으로 얻는 승리입니다. 이기는게 아니라 지지 않는 것… 욥은 고통의 근원은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알았습니다. 자기가 믿고 사랑하는 하나님을 놓지 않았습니다. 고난과 해방의 발원이 같은 하나님 한 분인지, 하나님 안에 빛도 있고 어두움도 있는지 욥은 뭐라고 답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욥은 “아, 지나간 날들이여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시던 그 옛날이 그립구나 (29:1)”라며 과거를 회상합니다. 다음 30장에서는 현재의 자기 모습을 말합니다.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 조롱하며 얼굴에 침음 뱉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활시위를 풀고 나를 괴롭게 하시니 저들이 나를 향해 덤비고 있구나 (30:11)”라는 표현은 무기력한 상태,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욥의 처지를 그립니다. 그런 욥의 결말을 우리는 압니다. ‘욥이라는 참 좋은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날 모든 것을 다 잃고 온갖 고통을 다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가 아닙니다. 욥기를 읽으면 우리의 절망을 이미 겪었던 사람을 만납니다. 나만큼 딱한 사람, 나보다 더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봅니다. 그런데 그는 지지 않습니다. 나도? 나도 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나도 이길 수 있을까요? 오늘 시인은 하나님을 경배하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며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십니다. 악한 자의 사슬을 끊으시고 나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4절). 시온을 미워하는 모든 자들이 지붕 위의 풀과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노래합니다. 이 노래가 귓가에 맴도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잊게 만드는 원수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고 나의 믿음이 너무 작아 어디 쓸 데가 있겠냐고 조롱하는 원수들을 이겨낼 수 있는 조용한 힘이 내 안에 생겨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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