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열한 번째 순례자의 노래는 라틴어 번역본을 따라 ‘데 프로푼디스'(De profundis)라는 제목으로 널리 사랑 받아 온 참회 시편입니다. 우리 찬송가 363장(“내가 깊은 곳에서”)의 가사도 이 시편에서 나온 것입니다.
시인은 “깊은 물 속에서”(1절) 이 기도를 올립니다. “깊은 물”은 시인이 처한 죽음의 깊은 계곡을 의미합니다. 육체적인 질병 때문에, 원수들로부터의 공격 때문에 혹은 심리적인 공황 상태로 인해 시인은 물속 깊은 곳에 빠진 듯한 상태에 있습니다. 물 속에 빠져 질식할 듯한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구절에서 시인이 표현하고자 했던 절망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절망의 가장 깊은 수렁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구원을 청합니다(1-2절).
하나님께 구원을 청하며 시인은 자신의 죄를 기억합니다. 죄로 인해 그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죽기 전에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속속들이 죄로 물들어 있기에 하나님 앞에서 죄 없다 할 수 없습니다(3절). 우리가 범하는 모든 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범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용서하실 분도 하나님 뿐이십니다. 다행히도 하나님은 용서에 너그러우시고 빠르신 분입니다(4절).
그렇게 기도하면서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립니다(5절). 죽어도 하나님의 음성만 듣는다면 아무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의 기다림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간절”(6절)합니다. 파수꾼은 밤새도록 성을 지키면서 추위와 피로와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새벽이 가까워질 때 그들은 동이 트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죽음의 위협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이 꼭 그렇습니다.
이어서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처럼 하나님만을 의지하라고 권합니다(7-8절). “인자하심”(7절)은 히브리어 ‘헤세드’의 번역입니다. ‘헤세드’는 헬라어 ‘아가페’처럼 조건 없고 변함 없는 영원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런 사랑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 사랑으로 그분은 회개하는 심령들을 “모든 죄에서 속량”(8절)하십니다. 그 은혜를 입기 위해 시인은 지금 성전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묵상:
인간성의 바닥에 이르면 결국 죄와 죽음만 남습니다. 이 두 가지가 결국 인간의 모든 두려움의 뿌리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이 두 가지 불편한 진실을 잊고 살기 위해 방책을 궁리합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에 대한 두려움을 의식의 가장 깊은 바닥에 뭉개 두고 다른 것들로 마음과 생각을 채웁니다. 의롭고 거룩한 존재인 것처럼 가장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스스로를 속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교만과 오만의 원인이며, 그것이 우리의 헛된 몸부림의 이유입니다.
고난은 그동안 우리가 스스로를 속여왔던 모든 것을 제거해 버립니다.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인생의 바닥에서 우리는 집요하게 외면하고 무시했던 죄의 문제와 죽음의 문제를 마주합니다. 이 때, 부를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이 때, 의지할 대상을 알고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 이름이 허접한 우상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면, 십자가에서 영원한 사랑을 확인해 주신 그분이라면, 그 사람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분의 다함 없는 사랑이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고 구원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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