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열세 번째 순례자의 노래는 시온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을 담고 있습니다. 먼저, 시인은 법궤와 성전에 대해 다윗이 가졌던 뜨거운 사랑을 회상합니다(1-5절). 그는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간절한 바램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법궤가 있다는 말을 에브라다에서 듣고, 야알의 들에서 그것을 찾았다”(6절)는 말은 사무엘상 6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가리킵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룩한 물건입니다. 성전이 성전일 수 있는 것은 법궤 때문입니다. 솔로몬 왕이 성전을 짓고 지성소에 법궤를 모셔 들였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습니다(왕상 8장). 시인은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 주님께서 성전에 임재하셔서 백성들의 예배와 기도를 받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8-10절).
이어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을 회상합니다(11-18절).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 드리겠다는 다윗에게 예언자 나단을 통해 주신 언약입니다(삼하 7:8-16).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지키셔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을 허락하시고 다윗의 왕권이 영원토록 지속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지만 솔로몬 왕 이후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지고, 후에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가 차례로 멸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 즉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이어 갈 것이며, 네 왕위가 영원히 튼튼하게 서 있을 것이다”(삼하 7:16)라는 약속이 깨어진 줄 알았습니다. 수백 년이 흐른 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후에야 그 약속은 “기름 부어 세운 왕”(17절) 즉 영원한 메시아에 대한 약속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다윗에게서 나온 “뿔”(17절, 개역개정)입니다.
묵상:
순례길에 오른 시인은 시온에 있는 성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전이 아니라 그 성전이 상징하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는 또한 다윗의 혈통을 이은 왕을 위해 하나님의 축복을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 왕은 한시적인 도구일 뿐입니다. 결국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 중에서 구원자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한 통치권을 받으실 분입니다(단 7:13-14). 옛날 순례자들이 성전을 바라보며 영원한 나라를 마음에 그렸던 것처럼,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을 마음에 그립니다.
이런 점에서 믿는 사람들은 모두 이중국적자입니다. 이 땅의 시민이면서 동시에 하늘 나라의 시민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대로 우리에게는 이 땅의 시민권보다 하늘 나라의 시민권이 더 중요합니다(빌 3:20). 이 땅의 시민권은 한시적으로만 유효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은 영원히 유효합니다. 우리의 충성심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이 땅의 나라에서 요구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요구하는 것과 상충되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요구를 따릅니다. 우리가 섬길 대통령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오늘 이 땅에서 한시적인 의무와 책임과 충성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자신이 속한 나라를 사랑하고 충성하지만, 국수주의적인 애국주의는 배격합니다. 우리는 법적으로는 한 나라의 국민이지만, 세계 모든 나라와 국민들을 하나님 안에서 형제자매 된 사람들로 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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