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이 시편은 22개의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를 따라 지어진 ‘이합체’ 시입니다. 이것은 시인의 문학적 능력의 표현이기도 하고 읽는 사람들이 기억하기 쉽도록 돕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알파벳의 순서를 따라 첫 글자를 기억하면 훨씬 암송하기에 쉽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정직한 사람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서 주님께 감사 드리겠다”(1절)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정직한 사람”은 “경건한 사람”, “의로운 사람” 혹은 “신실한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시편에서 그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 혹은 “비천한 사람”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따르는 사람은 정직하게 살아야 하는데, 타락한 사회에서 정직한 사람은 자주 손해와 박해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시인은 그들과 연대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것이 믿는 이들이 함께 모여 예배 드리는 이유입니다. 이 세상에서 손해를 당하더라도 하나님 편에 서겠다는 선언입니다.
이어서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하는 이유들을 열거합니다. 먼저, 주님께서 하신 일들 그리고 하고 계시는 일들 때문입니다(2-9절). 하나님께서 하신 수 많은 일들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일에 주목합니다(6절). 그 사건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증명하는 대표적 사건입니다. 그분은 한 번 약속하신 일을 끝까지 이루시는 분이며(5절, 9절), 그 약속을 이룰만큼 능력있는 분이십니다(6절). 또한 그분이 하신 일들을 보면 그분의 진실하심과 공의로우심이 드러납니다(7-8절). 그런 까닭에 시인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참으로 훌륭하시니, 그 일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모두 깊이 연구하는구나”(2절)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바른 깨달음을 얻으니,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할 일이다”(10절)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인간이 얻어야 할 지혜 중에 가장 중요한 지혜입니다. 뿐만 아니라, 진실과 정직과 정의와 사랑을 제대로 알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은 그 모든 선한 것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묵상:
기독교 신앙은 홀로 수도 정진하여 도를 깨치자는 노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고백이며,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선택입니다. 그 고백과 선택은 이 세상에서 살기에 불리합니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다른 믿음의 사람들과 연대해야 합니다. 시인이 “정직한 사람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겠다”(1절)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요 이방인입니다. 이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지 않으면 이 길에서 낙오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이며 또한 공적 예배의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그분의 전능하심과 신실하심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시인은 이 짧은 시편에서 “영원”이라는 말을 다섯 번(3절, 5절, 8절, 9절, 10절)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고, 그분의 신실함은 영원하고, 그분은 영원히 찬양 받으실 분입니다.
그런 분을 예배하고 섬기면 현실을 바로 보는 지혜를 얻게 되고 악한 현실 가운데 선하고 의롭게 살 용기를 얻습니다. 영원에 눈을 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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