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3편: 낮은 곳에 임하시는 주님

해설:

시편 113편부터 118편까지는 ‘할렐 시편’으로 불립니다. 이 시편들은 이집트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유월절 식사에서 불렸기 때문에 ‘이집트 할렐 시편’이라고도 불립니다. 113편과 114편은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불렀고, 나머지는 식사 후에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나눈 마지막 만찬은 유월절 식사였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에 “그들은 찬송을 부르고, 올리브 산으로 갔다”(마 26:30)고 마태는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찬송은 115편부터 118편까지를 가리킵니다. 

시인은 “주님의 종들”(1절)에게 말합니다. “주님의 종들”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고대 사회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를 담고 있는 그릇으로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은 주님을 찬양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2절, 즉 모든 시간에) 그리고 “해 뜨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3절, 즉 모든 공간에서) 하나님은 찬양 받으셔야 마땅 합니다.

시간과 공간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찬양 받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시인은 그분의 “높으심”(초월성)과 그분의 “낮추심”(내재성)을 제시합니다. 그분은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하늘보다” 높으십니다(4절). 인류 세계에 하나님 보다 높은 존재는 없으며, 온 우주에도 그분보다 높은 존재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높으신 분이 그 자리에서 누리려 하지 않으시고 스스로를 낮추셔서 하늘과 땅을 두루 살피시어 가난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을 찾아내어 귀한 이들과 같은 자리에 앉게 하십니다(5-8절). 그 한 예로, 사라와 리브가와 라헬과 한나에게 그렇게 하신 것처럼, 그분은 아이를 낳지 못하여 사람들로부터 무시 당하고 버림 받은 여인들을 회복시키십니다(9절). 사람들조차 눈길을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서 눈길을 주신 것입니다. 

이방의 모든 신들은 자신이 서 있는 높은 자리에서 지시하고 호령하고 강요합니다. 더 높아지기를 도모합니다. 반면, 우리의 하나님은 높은 곳에 머물러 있기를 사양하고 낮은 곳, 어두운 곳, 밀려난 곳, 상처난 곳, 냄새나는 곳을 살피시고 그곳에 버려진 사람들을 높이십니다. 그래서 시인은 “주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어디에 있으랴?”(5절)고 질문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고 그 모든 영역을 넘어선 곳에서 찬양 받으셔야 할 이유 중 하나입니다.

묵상:

이집트인들의 노예가 되어 고통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아픔을 하나님께서 살피시고 응답하심으로 출애굽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호렙 산 떨기 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 이 땅으로부터 저 아름답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 가려고 한다”(출 3:7-8)고 말씀하십니다. 이렇듯 높은 곳에 계시지만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과 한숨을 보고 들으시고 살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구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지킨 이유는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곳을 찾으신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을 기념하는 이유는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가장 낮은 곳을 살피시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돌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그런 분이시기에 오늘도 우리는 그분을 찬양하고 또한 그분께 기도를 올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이 마음을 삶으로써 구현해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인들은 예수님을 찬양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빌 2:6-8)라고 고백했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 계셨으나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 오신 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런 주님을 통해 사랑과 은혜를 경험했기에 우리는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기를 원해요”라고 기도하고 또한 그렇게 살기를 다짐하는 것입니다. 

5 responses to “시편 113편: 낮은 곳에 임하시는 주님”

  1. 가장 높고 귀한 보좌를 버리시고 가장 낮은 구유에 오신 주님, 벌레보다 못한 인생을 위해
    가장 처참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은 당연히 항상 찬양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가장 기쁘게 받으시는 찬양은 가장 낮고 어려운 사람들과 같이하며 겸손히 그들의 눈물을
    닥아주는것임을 잊지않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찬양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가족들과 함께소외된자들과 함께하고 사랑을 나누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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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금 참혹한 지역인 우크라이나와 남 터키, 북시리아의 아비규환을 보시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프시어 그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신경을 쓰시는 하나님 세상의 불 공정을 바로잡아주시고 주님의 공의가 우리가 사는 현실을 다스리도록 이끌어 주실것도 간구합니다.
    이번 부흥 집회를 통해 성경에서 뜻하는 성전의 의미를 옳게 깨닫게 해 주시고 남은 두번 집회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정서적인 신앙에서 본질 적인 신앙으로 발 돋움하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낮은 곳을 돌보아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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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저의 주인 되시는분이여 찬양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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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지난 몇 년 사이 묵상의 시간을 가지면서 새롭게 배운 것 가운데 하나는 연민입니다. 연민은 타인의 처지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타인의 사정을 알고 또 감정적으로도 공감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에 대해 사용하는 ‘긍휼’이라는 단어는 불쌍히 여겨 돌보아
    준다는 뜻입니다. 긍휼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서로를 연민의 마음으로 대합니다. 예수님은 연민이 많으신 분, 이해와 사랑이 앞서는
    분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시편을 읽는데 문득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신이 가난하고 궁핍한 인간에게 관심이 있다고
    말하는가? 비참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풀리지 않는 인생살이에 지친 인간에게 눈을 돌리는 신에 대해 서술한 기록이 있는가? 오랫동안 나는
    하나님이 잘 믿는 사람, 신앙적으로 탄탄한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을 알고 사랑하는 일에 열심이 있는 사람, 죄에서
    멀어지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을 ‘먼저’ 사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값없이 주시는 사랑과 은혜라고 말할 때도 무의식적으로는 값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한다는…이런 생각이 타인을 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에게 사랑할 만한 구석이 있는지를 살피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연민이 물결이라면 막힘없이 흐르는 개울이 아니라
    여기 저기 돌덩이에 걸려 막히고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시편은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를 행복한 엄마로 만드시는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읽는데 덜컹했습니다.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임신하지 못해 불행한 여자들이 어떤 거창한 약속과 정성을 올렸기에
    하나님이 움직이셨을까요. 그들에게 무엇이 있어 하나님께 댓가로 내놓았을까요. 없었을 것입니다. 치성과 맹세로 얻은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연민으로 받은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이 마음이 나를 살리시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아침입니다. 낮은 데로 흐르는 물입니다
    하나님은. 바위를 돌고 뚫고 내려오는 물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우리를 지켜 보시는 하나님, 몸을 굽혀 (6절) 우리를 살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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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이지만 변하기 쉽고 자신의 쾌락과 이익을 추구하고 모함하고 헐뜯고 죽이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당신이 지으신 인간을 그냥 버리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마음으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육신을 입으시고 내려오셔서 자신이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마지막 유언으로 서로 사랑하해야 살 수 있다는 새계명을 주셨음을 감사하며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 깊고 넓으신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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