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누가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기록한 다음 그분으로 인해 일어난 ‘이후의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데오빌로(1절)는 이 프로젝트를 재정적으로 후원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보고 하는 식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는 먼저 “첫 번째 책”(개역개정 “먼저 쓴 글”, 1절)에서 기록한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2절) 그 이후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3-4절).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은 40일 동안 특별한 방식으로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부활이 인류 역사 상 처음 일어난 일이라는 점 그리고 부활이 일상적인 경험을 넘어선 사건임을 생각하면,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특별한 방식으로 제자들에게 당신을 보여 주신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부활 사건의 의미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 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그가 택하신 사도들”이라고 부릅니다(2절). ‘사도’는 ‘보냄 받은 사람’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제자’로서 그분에게 배우고 훈련 받았으니, 이제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지속하기 위해 보냄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일을 위해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에 머물러 약속된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눅 24:49). 그 “약속된 것”은 성령입니다(5절).
40일이 다 찼을 때 사도들이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라고 여쭙니다. 그들은 아직도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생각했고, 그분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7절)라고 답하십니다. 제자들은 지금 당장 이 땅에 세워질 이스라엘 나라를 생각하고 여쭌 것인데, 예수님은 마지막에 세워질 새 하늘과 새 땅을 생각하고 대답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실 일이므로 미리 알려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8절)라고 답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올지를 두고 계산하지 말고 성령의 능력을 받아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라는 뜻입니다. 가까운 곳(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먼곳(땅끝)까지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다음 예수님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홀연히 사라지십니다(10절). 여기서 누가는 “들려 올라가시니”(개역개정 “올려져 가시니”)라는 수동형 동사를 사용합니다. 예수님이 신통력을 부린 것이 아니라 하늘의 힘이 그분을 삼켰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사도들은 망연히 하늘만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그 때 “흰 옷 입은 두 사람”(11절)이 그들 곁에 서서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묵상:
우리는 중간기에 살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어 주실 것인데, 우리는 지금 그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주님께서는 성령의 선물을 약속하셔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우리에게 드러났습니다만, ‘아직’ 다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비밀이 장차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를 진실로 믿고 경험하고 있다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 기가막힌 이야기를 나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습니다.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그 나라의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며,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복음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약속된 성령이 임하시면 그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사도행전의 기록을 통해 그 약속과 예언이 실현되는 가슴 벅찬 이야기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읽고 묵상하면서 그 일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지기를 소망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사도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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