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장 16-40절: 우리가 속한 권세

해설:

루디아의 도움으로 빌립보 선교는 활력을 얻었는데, 그 과정에서 “귀신 들려 점을 치는 여종”(16절)을 만납니다. 그 여종의 주인들은 귀신 들린 상태를 이용하여 돈벌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종이 바울 일행을 보고는 그들이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다고 외칩니다(17절). 그 여종이 여러 날 동안 바울 일행을 따라 다니며 그렇게 외치자 바울이 그 여종을 귀신으로부터 놓임 받게 합니다(18절). 

여종의 주인들은 돈 벌이가 끊긴 것에 분노하여 바울과 실라를 관원에게 고발하고 거짓 증언을 합니다(19-21절). 그들이 그 지역에 유력한 사람들이었는지, 무리가 그들 편에 서서 선동합니다. 관원들은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질을 한 다음 감옥에 가둡니다(22-24절).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 합니다”(25절). 그 때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감옥 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려나갑니다. 졸고 있던 병사가 잠에서 깨어나 옥문이 모두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탈옥한 줄 알고 문책 당할 것이 두려워 자결을 하려 합니다(26-27절). 바울은 그에게 자신들이 그대로 있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가 보통 사람들이 아닌 것을 알고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30절)라고 묻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간수의 집으로 가서 온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풉니다(32-34절). 

아침이 되자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다시 감옥으로 데리고 갑니다. 얼마 후, 치안관들이 바울과 실라를 풀어주라는 전갈을 보내옵니다. 그러자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인 것을 밝히면서 직접 와서 사과하라고 요구합니다(35-37절). 로마법에 의하면 로마 시민을 정당한 사유 없이 폭행하거나 구금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치안관들은 더욱 두려워 합니다. 그들은 바울과 그 일행에게 찾아와 사과하고는 빌립보에서 떠나 달라고 청합니다. 그들은 루디아의 집으로 가서 신도들을 만난 후에 데살로니가로 떠납니다(38-40절).

묵상:

빌립보에서 바울 사도는 두 종류의 권세와 충돌합니다. 하나는 여종을 통해 활동하는 영적 권세였습니다. 예수님의 경우에도 그랬던 것처럼, 악한 영은 바울의 정체를 알아보고, 그가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다고 외칩니다. 얼른 생각하면 악한 영이 복음 전도에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바울도 귀신의 도움을 거절합니다. 그리고는 여종을 귀신의 사로잡힘으로부터 놓임 받게 만듭니다. 바울과 실라를 통해 역사하고 있던 성령은 모든 영적 세력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성령의 임재 앞에서 악한 영은 무력해집니다. 

다른 하나는 로마 제국의 물적 권세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지상의 물적 권세로 인해 감옥에 갇힙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권세에 짓눌리지 않습니다.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기도하고 찬양합니다. 그들이 기도하고 찬양하는 동안 땅이 흔들려 감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립니다. 지상의 물적 권세가 그들을 결박할 수 없었습니다. 감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렸지만 바울과 실라는 도주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권세 아래 있는 사람답게 그들은 그 자리에서 치안관의 사과를 받아냅니다.

믿는 이들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의 통치 아래에 있습니다. 따라서 믿는 이들이 두려워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오직 우리가 어떤 분의 권세 아래에 있는지를 망각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는 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겸손한 당당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4 responses to “사도행전 16장 16-40절: 우리가 속한 권세”

  1. 십자가의 은혜를 고백하지만 삶이 따르지못하는 믿음입니다, 그렇지만 자녀들과 육신의
    친족 들의 구원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힘들고 어려움을 당할때에도 주님께 감사하며 찬양
    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가족들과 함께 말씀을 증언하므로 어려움을 당하고 핍박
    받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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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자신의 사회적지위를 끝까지 내세우면 고통스러운 착고를 차고 감옥을 가지않을 수 있음에도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고통을 자청함을 통해 간수 가족이 구원받게 한 바울이 작은 예수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복음 전파 방법을 따라할 수는 없지만 주님이부르시는 그날까지 영혼구원의 거룩한 부담을 안고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 주시고 인도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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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어려운 일을 당합니다. 귀신들린 여종 때문에 시작된 일입니다. 여종의 신통력을 앞세워 돈을 벌던 주인들이 바울이 귀신을 내쫓아 버리자 밥줄이 끊겼다 생각해 바울 일행을 법으로 걸었습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이지만 빌립보의 관리들이 처리 하는대로 내버려 둡니다. 아직 밝힐 때가 아니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옷을 벗기고 매를 맞는 고통을 참아 내기가 어려웠을텐데 그들은 묵묵히 당합니다. 어느날 밤에 지진이 일어나 감옥 문이 열리고 몸을 묶은 사슬까지 풀리지만 그들은 감옥에서 나가지 않습니다. 깜빡 졸던 간수는 감옥 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 갔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그 책임을 지겠다는 뜻으로 자결을 하려 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여전히 감옥에 남아 있다 죽으려는 간수를 말립니다. 이 일로 간수는 온 가족이 세례를 받습니다. 죽으려던 사람이 살게 되었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높은 관리들이 바울 일행을 석방하지만 바울은 이제야 로마 시민권자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당황한 관리들은 사과를 하고 도시를 떠나 주십사 빕니다. 바울은 빌립보의 신도들을 격려하고 떠납니다. 나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매 상황에서 바울과 반대로 했을지 모릅니다. 여종을 그냥 둔 채로 선교를 계속하고, 혹여 관리들이 시비를 걸면 로마 시민증을 내보였을 것입니다. 감옥 문이 저절로 열리면 당연히 나왔을테고, 유명세를 선교에 활용하면서 도시에 남았을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에서 여종과 간수는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주인들에게 더 이상 돈벌이가 되지 않게 된 여종은 이전보다 더 비참한 인생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감옥을 지키는 간수 또한 승진 대신 벌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구원’이 ‘고생 끝, 행복 시작’과 똑같은 말이 아니라는 진실이 우리를 불편하게 합니다. ‘영생’이 ‘죽지 않는다’는 마술과 거리가 멀다는 진실이 우리를 당황하게 합니다. 불편하지 않고, 당황스럽지 않은 진실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감옥이 흔들릴 정도의 큰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26절).” 우리의 인식과 습관을 흔드는 지진이 날 때가 있다는 뜻입니다. 담대하고 당당하게, 그러면서도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살게 하소서. 허락하신 오늘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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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공포의 대제국 로마라는 권력이 복음전도에 사용되는 것을 봅니다. 예전 미국이 여러나라에 많은 선한 일을 한것을 또한 ㅋ떠올립니다. 복음에 있어서 조직이나 집단의 역할을 내가 함부로 예단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 상황에 맞게 쓰십니다. 일반화하여 무조건 악하거나 부패하다고 배척한다는것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게 주님의 선한 마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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