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9장 1-20절: 비상한 기적

해설:

바울은 갈라디아와 부르기아 지방을 거쳐 에베소에 이릅니다(1절). 2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귀환할 때 바울은 그곳에 잠시 들렀는데, 더 있어 달라는 주민들의 요청을 따라 다시 오겠다고 약속 한 바 있습니다(18:21). 그곳에는 아볼로를 통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요한의 세례 만 받은 상태였습니다(2-3절). 바울은 그들에게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를 설명해 준 뒤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풉니다(4-5절). 또한 바울이 그들에게 손을 얹어 기도하자 성령께서 임하십니다(6-7절). 

바울은 석 달 동안 회당을 거점으로 하여 유대인들에게 전도합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바울을 비판하고 배척합니다. 그러자 그는 회당을 떠나 ‘두란노’라 불리는 학교에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시작합니다(8-9절). 그는 2년 동안 그곳에서 전도했고, 많은 열매를 거둡니다(10절). 에베소에서 전도하는 동안에 바울에게서 “비상한 기적들”이 일어납니다(11-12절). 

그곳에 사는 유대인들 중에 귀신축출가들이 몇 있었는데, 그들이 바울에게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는 “예수의 이름”을 주문으로 여깁니다. 그들은 바울을 흉내내어 귀신 들린 사람들에게 그 주문을 사용했다가 큰 봉변을 당합니다(13-16절). 이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자 많은 이들이 두려워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찬양합니다(17절). 그 결과,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공개적인 회개 운동이 일어납니다(18절). 또한 마술을 부리던 사람들이 복음으로 돌아서서 그동안 사용하던 마술책들을 모두 모아 불살라 버립니다(19절). 그 책들을 값으로 환산하면 “은돈 오만 닢”에 해당했다고 합니다. 은돈 한 닢이 남자 성인의 하루 품삯이었으니, 한 사람이 136년 동안 일해야 하는 거금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복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나갑니다(20절).

묵상:

에베소에서 있었던 일들은 우리 나라의 초기 선교 역사에 일어난 일을 생각하게 합니다. 바울의 안수를 통해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건과 우상 숭배자들이 복음을 듣고 행한 대대적인 회개 운동은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는 언제나 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성령 운동으로 알려진 1907년의 ’평양 대부흥 운동‘은 1903년에 시작된 ’원산 회개 운동‘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원산에는 캐나다 출신의 감리교 선교사 토마스 하디가 10여 년 넘게 의료와 교육 사업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의사로서 그리고 저술가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지만, 전도의 열매는 부실하여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는 선교사 수양회에서 말씀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기도로 준비하는 중에 자신이 지적으로, 영적으로 교만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는 수양회에서 설교를 하면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했고, 그의 회개에 도전을 받아 다른 선교사들도 일어서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합니다. 

다음 주일에 하디 선교사는 원산감리교회에서 설교를 하면서 또 다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그러자 교인들도 그 자리에서 일어나 숨기고 있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합니다. 그들은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 죄의 습관들을 청산합니다. 노비를 풀어 주기도 하고, 첩을 내보내기도 하고, 노름을 청산하기도 하고, 빚 문서를 불태우기도 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자발적으로 행한 일들입니다. 그 회개 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몇 년 후에 평양대부흥운동으로 꽃을 피우게 됩니다. 

“비상한 기적”(11절)은 죽을 병이 낫고 장애인이 치유 받는 것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복하고 회개하며 그 죄를 청산하고 새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상한 기적입니다. 그 비상한 기적은 오늘 우리에게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주시고 유월절 식사를 나누신 다음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 되신 ‘세족목요일’(the Maundy Thursday)입니다. 주님께서 고난 당하시고 죽임 당하신 이유는 우리에게 이 ‘비상한 기적’이 일어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죄의 결박으로부터 해방되고, 죄의 습관을 청산하고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주님의 값진 희생에 대한 가장 좋은 보답입니다.

3 responses to “사도행전 19장 1-20절: 비상한 기적”

  1. 에스베리 에서 일어난 영적 대 각성이 전 미국과 조국과 온세상에 퍼지기를 기도합니다.
    민란이 두려워 예수님 대신 바라바를 내어준 빌라도의 비겁한것을 깨닫고 성령의 인도
    안에서 담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매일 아침 허락하시는 사귐의 소리가 두란노 같이
    모두가 기억하는 사귐의 소리라 되도록 간구하는 아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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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테네와 고린도가 전도 성적이 저조한 편이었다면 에베소에서는 분위기가 반전이 됩니다. 누가는 아테네에서 “몇 사람”이 믿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에베소에서 이 년이 지난 뒤엔 “아시아 지방의 모든 유대인과 그리스인”이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놀라운 기적도 계속 해서 일어납니다. 개인이든 사회든 변화의 발화점은 회개인 것 같습니다. 고난주간의 뜻도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력의 시간과 일상의 시간이 두 줄인 것처럼 보여도 그 시간을 사는 주체는 나 입니다. 어떤 날은 하나님의 일에 더욱 민감하고 어떤 날은 사는 데 치여 지나가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정의하고 구분하는지는 각자의 몫이겠지요. 자연재해나 큰 사건 사고가 일어나면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찾고 기도합니다. 아무 것도 아니고 군중 속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 ‘나’지만 주님이 세는 양이요 기다리는 자녀라는 생각이 사무치는 때가 있습니다. ‘나’는 곧 주님이 부르시는 ‘너’라는 것을 듣는 순간이 있습니다. 고난주간에 읽는 성경 속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여기 저기에 군중도 많이 모입니다. 주요 인물들 중에도, 군중 속에도 내가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서든 자기를 볼 수 있게 지어졌고, 어디서든 하나님을 찾게끔 지어진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몇 사람 밖에 안되는 신도를 얻었을 때에도 찬양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올 때에도 찬양하는 바울의 태도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주님 생각으로 가득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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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작은 곳에서 뜻밖에 화재의 발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흥이 작은 계기로 시작되어 큰 흐름을 만든것처럼. 작은 관심과 친절한 인사가 예수 모르는 한사람을 교회로 이끌수 있습니다. 기적은 상식적으로 일어날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천한 존재인 우리가 지극히 높은 분의 자녀가 돠는것, 평생 짊어질 죄의 무게 탕감받은것, 다시 살아나는 것, 아무 연고없는 조선땅에 선교사가 오게 해주신것, 예수 믿을 이유 없는 친구가 나를 따라 교회가는것. 그럼에도 내가 감동하며 살지 않는것은 그 엄청난 기적의 깊이를 차마 실감하지 못하는것이겠지요. 나는 무지할뿐 아니라 뻔뻔합니다. 이런 저를 사랑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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