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121절부터 128절까지는 매 절이 히브리어 알파벳 ‘아인’으로 시작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공의와 정의”(121절)를 행하는데, 그것을 방해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법을 짓밟아 버렸고”(126절) 경건한 사람들을 “억압”(122절)합니다. 시인은 그런 상황에 처하여 하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현실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도움은 더디기만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다가 시인은 지쳐 버립니다(123절). 그래서 주님의 도움을 구합니다(124-126절). 시인은 주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순금보다 귀하기에 매사에 그 말씀을 따라 살 것이라고 다짐합니다(127-128절).
129절부터 136절까지는 ‘페’로 시작합니다. 이 연에서 시인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고백합니다. 그는주님의 말씀이 “너무 놀랍고”(129절), “주님의 말씀을 열면, 거기에서 빛이 비치어”(130절), 말씀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을 벌리고 헐떡”(131절)인다고 고백합니다. 시인은 “어떤 불의도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133절) 해 주시고 “사람들의 억압에서 나를 건져”(134절)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의 욕심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눈물을 시냇물처럼”(136절) 흘리며 안타까워 합니다.
137절부터 144절은 ’차데‘로 시작합니다. 시인은 주님의 의로우심과 진실하심을 찬양합니다(137-138절). 그것을 알고 체험할수록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긍휼함이 사무칩니다(139절). 시인은 사람들에게 멸시 당하는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사모합니다(140-141절). 재난과 고통이 엄습해도 주님의 말씀에서 기쁨을 찾습니다(142-143절). 의로우신 주님의 말씀이 생의 활력이 됩니다(144절).
145절부터 152절까지는 ‘코프’로 시작합니다. 이 연에서 시인은 자신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호소합니다. 그는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서 울부짖으며”(147절) “온 마음으로”(145절)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합니다. 그는 주님의 의로우심과 진실하심에 따라 자신을 돌보아 주시기를 구합니다(149절). 시인은 악한 자가 “가까이”에서 자신을 해하려고 하는데(150절), 주님도 “가까이” 계시니 자신을 지켜 달라고 기도합니다(151절). 그에게 주님의 말씀은 영원한 증거입니다(152절). 그래서 그는 뜬눈으로 밤을 새울 정도로 주님의 말씀을 사모합니다(148절).
153-160절은 모두 ‘레쉬’로 시작합니다. 이 연에서 시인은 다시금 악인들로부터 자신을 구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변호인”이 되어 달라고 청합니다(154절). 악인들은 “율례를 따르지 않으며”(155절)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습니다(158절).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을 핍박합니다(156절). 하지만 그는 주님의 법도를 버리지 않습니다. 주님은 약속을 지키는 분이시며(155절) 긍휼이 많은 분이기 때문입니다(156절). 그래서 그는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분의 율례를 떠나지 않습니다(159-160절).
묵상:
시편 119편에서 계속 반복되는 주제가 넷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율법(말씀, 율례, 증거, 법도 등)에 대한 찬양이고, 둘째는 그 율법을 항상 묵상하며 지키겠다는 시인의 고백이며, 셋째는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경건한 사람들 억압하는 사람들의 악행이고, 넷째는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지켜 달라는 시인의 기도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시인의 감정에 대한 표현이 눈길을 끕니다. 그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고백하면서 “입을 벌리고 헐떡거린다”(131절)고, 혹은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서 울부짖는다”(147절)고, 혹은 “묵상하다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148절)고 표현합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정도 뜨겁습니다. 시인은 그들의 행태를 보면서 분노합니다. 악한 사람들을 볼 때, “내 열정이 나를 불사릅니다”(139절)라고도 고백 하고, 그들을 보고 “나는 참으로 역겨웠습니다”(158절)라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존재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부정 당하고 조롱 당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진리를 외면하고 자신의 죄된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은 경건한 사람에게는 참고 보기 어려운 일입니다. 진리를 알아갈수록 비진리 혹은 반진리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정의를 알아갈수록 부정의 혹은 반정의에 치를 떨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들을 생각하며 “시냇물처럼”(136절) 눈물을 흘립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의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를 모르고 사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며, 그렇게 허비된 그들의 삶의 마지막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자기 혼자 하나님을 알고 그 말씀의 맛을 누리며 복된 길을 걷는 것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복인 줄을 알기에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것 없이 사는 것으로 인해 안타까워 눈물을 흘립니다. 그 안타까움이 그로 하여금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고 또한 말씀을 전하게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내 마음의 온도가 이웃에 대한 온도를 결정합니다. 그분에 대한 사랑이 뜨거워지면, 그분의 뜻대로 살려는 의지가 강해지고, 그분을 거역하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애끓음이 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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