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여섯 번째 순례자의 노래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의 ‘영원한 안전’에 대해 노래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시온 산에 비유합니다(1절). 시온 산 위에 세워진 예루살렘 도성은 그 무엇도 흔들 수 없는 든든한 요새처럼 보입니다. 믿는 사람을 돌보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시온 산보다 더 크고 강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악인의 권세”가 힘을 떨칩니다(3절). 개역개정에는 “악인의 규”라고 되어 있는데, “규”는 당시에 왕이 통치할 때 손에 쥐고 있던 막대기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왕의 절대 권력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왕이 되어 권세를 휘두르기를 원합니다. 반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력을 만들거나 권세를 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잡아 주실 것을 믿고 그분의 뜻을 따라 거룩하게 살기를 힘쓸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죄악을 일삼는 사람들이 득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등살에 믿는 이들이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게 살기를 힘쓰는 사람들을 보호해 주시고(4절) 악하게 사는 사람들을 심판해 주시기를(5절) 기도합니다. 그래야만 이스라엘에 평화가 깃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묵상:
에스더기 4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절대 왕정 시절에 왕이 손에 쥐고 있던 규는 절대적인 권세를 상징했습니다. 왕이 그 막대기 하나로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인류 공동의 권력에의 욕망이 절대화 된 상징물입니다. 규를 손에 쥐고 권세를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은 절대 군주 한 사람뿐이지만, 죄성에 물든 인간은 누구든지 그런 권세를 부릴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 그래서 권력을 잡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고,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 내에서 권세를 부리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을 “만인을 향한 만인의 투쟁”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규를 내려 놓는 것입니다. 진정한 권세와 권력은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인정하고 그분께 자신을 내어 드립니다. 세상에서 강해지고 커지기를 소망하기를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서 약해지고 작아지기를 구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의 그늘에 머물러 살기를 힘씁니다.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삶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시온 산으로 순례를 가는 이유도, 성전에서 값비싼 제물을 바치는 이유도 절대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고백하기 위함입니다.
이렇듯 모두가 하나님 한 분만을 왕으로 섬기며 모두의 손에 쥐어져 있는 규를 내려 놓을 때 진정한 평화는 자리를 잡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기도하는 궁극적인 소망입니다.
Leave a Reply